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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기록관-우리가 몰랐던 경북대 이야기

15. 경북대신문 창간, 청춘의 도전이 일군 ‘도도한 역사의 물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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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디서나 휴대전화로 뉴스를 본다. 태블릿이나 PC를 통해서 자료를 찾고, 세상 소식을 접한다. 카페에 앉아서 바깥 풍경을 인스타에 올리기도 하고, 페이스북이나 트위트로 세계 사람들과 ‘현재’를 공유한다. 나와 세상, 나와 타인과의 소통이 ‘지금’, ‘여기’에서 가능한 것이 2021년의 일상이다. 기술 발달에 따라 매체도 형태도 달라져 온 <경북대신문>은 경북대학교 역사의 산증인이다. 매호 언론으로서의 역할을 했고, 70년 축적된 정보는 경북대 역사의 기록물로서의 가치가 드높다.
<경북대신문> ‘창간호’는 1952년 9월 1일 간행되었다. 신문의 창간까지는 경북대학교가 1946년 9월 국립대학으로 승격된 것으로부터 6년, 전신인 대구사범학교(1923년), 대구의학전문학교(1933), 대구농업전문학교(1944)로부터는 대략 30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경북대신문 50년사에 따르면, “개교 이후 대학 내의 ‘새 소식’을 전하고, ‘연구물’을 발표하고, ‘신지식’을 보급하여 지역사회를 선도하는 대학신문이 필요하다는 두 흐름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신문은 오늘날로 보면, ‘신문’과 ‘학술지’를 겸하는 성격이었다.
2020년 들어 코로나가 ‘어제와 같은 삶’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80년대 캠퍼스는 ‘최루가스’가 창궐했다. 그 속에서도 새싹은 돋았고, 청춘의 에너지는 들끓었고, 시간은 흘렀다. 좌절의 연속이었지만 그 덕에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1952년을 기억하는 이유는, 신문의 창간이 있기 때문이다. “도도한 역사의 물줄기”가 지속되었다. 그동안 경북대신문은 구성원들의 소통과 교류의 장이었다. 학교 역사와 함께한 거의 유일한 공식 통로이자 매체였다. 그것의 시작은 ‘창간’의 첫걸음이었다.
당시 문리과대학 이효상 학장이 고병간 총장의 재가를 받아 ‘경북대학신문’ 창간을 추진하였다. 한편으로 사범대학 김사엽 교수의 지도를 받던 국어교육과 재학생들이 ‘사대학보’ 발간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들이 종합경북대학교의 대학신문 발간으로 뜻을 모으고, ‘사대학보’ 발간 준비금을 ‘경북대학신문’ 창간 비용으로 전용하여 개교일인 5월 28일 창간을 계획했다. 준비과정이 길어져, 8월 7일에 공보실 제605호로 신문 발행 허가를 받고, 9월 1일자로 창간호를 발행하게 되었다.
8면으로 구성된 창간호의 제호는 “慶北大學新聞”이었다. 월간 주기로 타블로이드판으로 제작되었다. 1면에 총장인 사장의 창간사와 문리대학장의 축사가 실렸고, 경상북도지사, 경북교육위원회의장, 경북대학교 건설위원회 위원 등의 축사도 함께 실렸다. 2면은 학술적 성격의 에세이가 실렸고, 3면에는 교수와 학생의 기고문 등으로 구성되었다. 4~8면에 걸쳐서 각종 축사, 칼럼, 문예작품, 에세이 등이 각 면에 배치되었다. 7~8면 하단에는 창간을 축하하는 지역의 대학과 유관 기관들의 광고가 실렸다.
요즘 기준으로 보면, 면의 성격 구분이 명확하지 않고 뉴스 기능도 약하고 편집 디자인이나 고정란의 구성 등에서 약점이 보이지만, 그 성과를 가볍게 평할 수 없다. 서울대의 ‘대학신문’과 고려대의 ‘석탑’ 외에는 대학교의 신문이 없던 시기에 “경북대학신문”이 창간되었다는 점도 그러하거니와 학생들이 신문의 창간의 주역이었다는 점도 되새길 점이다. 당시 ‘재학생’에게는 누구도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이었다. 그것은 미지의 여정이다. 그 길을 먼저 걸어본 교수도 없었다. 그야말로 ‘청춘’의 ‘도전’이었다.
2021년 청춘들에게 묻는다. 배운 것만 할 줄 아는 사람, 부모 세대가 가 본 길만 골라 가는 사람, 이런 사람이 되고자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랬다면 스마트폰도, 심지어 전화도 자동차도 세탁기나 냉장고도 없었을 것이다. 대학이라는 공동체가 소중한 이유는,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꿈꾸고, 아무도 해보지 않은 일을 시도하고, 모두가 실패한 것을 다시 도전해 볼 수 있는 공간이자, 그 청춘의 시기이기 때문이다. ‘경북대 인터넷 신문’의 독자 여러분. 70년 전 도전과 성취를 일군 사람이 ‘20대’였다는 점을 자랑스럽게 여기시길.


▲경북대신문 창간호(1952년 9월 1일) 1면


▲경북대신문 1655호(2021년 5월 31일) 1면


지현배 동문
(사범대 87. 동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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