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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유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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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왜 사는가? 나는 항상 이런 질문에 농담 반 진담 반인 “죽지 못해서 산다”라고 답했다. 삶은 고난과 시련의 연속이다. 행복의 순간은 찰나에 불과하며 그 찰나마저 많은 횟수가 아니리라 생각한다. 입시 걱정이 끝나면 취업 걱정이, 취업 걱정이 끝나면 독립 걱정이, 대개 우리는 우리의 미래가 굉장히 근사하고 기쁜 일만 가득하기보단 걱정과 힘듦이 더 많은 것이라고 알고 있다. 삶을 연동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단순히 죽음이라는 미지의 공포에서 오는 생물학적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생명을 연명하는 것일까?
내 인생에 있어 가장 끔찍했던 순간을 꼽으라면 작년의 기억이다. 1년 동안의 재수 과정과 그리고 씁쓸한 불합격의 고배, 특히 결국 4차 마지막 합격자 발표까지 내 번호가 나오지 않아 절망해 일주일간 방에서 나오지 않았던 그 일주일의 기억은 아직도 꺼내기가 두려워 무의식 저편으로 밀어두었다. 힘들었던 기억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내 뇌의 반사작용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와서는 사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단순히 그냥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었고 일주일 동안 제대로 끼니를 챙겼던 적이 없었다’ 정도로 애매하게 생각날 따름이다. 
시간이 흐르고 그때의 기억을 마주할 자신이 생기고 그때의 기억이 궁금해지자 그때 휴대폰에 쓴 메모들을 읽어보았다. 나 자신이 쓴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적나라했고 원색적인 자아비판의 향연이었다. 우울증은 자기혐오에서 비롯된다. 어느 날짜는 진지하게 죽음을 계획한 기록도 있어 나 자신도 굉장히 놀랐다. 죽고 싶을 정도로 자기혐오에 빠져있었던  내가 과연 어떻게 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충동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궁금증이 들었다. 물론 실제로 죽음을 각오할 만큼 그렇게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니란 것도 나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항상 상상만 거창하지 현실은 결국 아무것도 안 하는 행동력 없는 나의 본래 성격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래도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고3 때의 기억 때문이다. 고3과 재수, 둘 다 똑같은 입시 시절이었지만 나에게 있어 이 두 해는 판이하였다. 한 해는 내 인생에서 제일 행복했던 해였고 한 해는 가장 끔찍했던 해였으니 말이다. 흔히들 몰래 하는 게 더 짜릿하다고 하던가, 그 당시 기숙사에서 함께 생활했던 친구들과 고3 특유의 억압과 감시를 피해 하루하루가 수학여행 같았던 그 추억들은 당연히 내 머릿속에서 가장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물론 그 여파였는지 같이 놀던 친구들과 나란히 재수를 강행하게 되었지만 지금 그때 친구들을 다시 만나 얘기해봐도 그 누구도 그때의 1년을 후회하지 않았다.
행복했던 기억은 자존감의 회복에도 영향을 끼친다. 우리가 미래를 기대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과거의 확실했던 행복이다. 누구나 미지의 것을 두려워한다.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행복했던 적이 있으니 미래에 또 행복할 것을 예상하며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노력할 수 있는 것이다. 추억은 삶의 원동력이 된다. 나에게 있어 죽고 싶을 때 다시 살고 싶어지게 된 동기는 그때의 그리움 때문이었다. 
tvN <어쩌다 어른>에서 김창옥 교수는 “추억은 웜홀 같은 역할을 한다. 힘들 때 그 기억을 떠올리는 순간 그때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추억은 ‘우리의 인생이 꽤 괜찮았지’라며 자체 삶의 보정 필터가 된다. 여러분들의 인생에 있어서 행복 보정 필터는 무엇인가?

김홍영
문화부 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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