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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유변

괜찮다. 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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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해보다 몇 시간은 먼저 떠오르는 걱정을 뒤로하고 깊은 한숨을 쉬며 나는 또 학교에 갈 준비를 했다.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하며 조금은 걱정을 씻어보려 했다. 가방 속에 든 전공 책들은 삶의 무게 만큼이나 무겁기만 하다. 그렇게 앞만 보고 바쁘게 뛰어가다 보면 어느새 해는 지고 밤이 찾아온다. 그리고 또 새벽이 오면 밝아지려는 어떠한 걱정보다도 먼저 눈을 감으려 애쓴다. 누가 나를 해코지하지 않아도, 어떤 긴박한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과거 괴로웠던 기억이 떠오르고 앞으로의 일을 미리 걱정하며, 나는 불을 끈다.
나의 인생에는 늘 불안감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남들보다 1년 늦었다는 두려움과 뚜렷한 미래가 없다는 불안감. 늘 우리의 불안함은 수많은 인파 속에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혼자 있을 때 조용히 뒤로 다가와 칼을 꽂아버린다. 대학에 입학하고 신문사에 들어와 한 선배에게 ‘행복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받았다. 한 번도 생각해보진 않았지만 왜인지 답을 바로 알 것 같았다. ‘손으로 잡으려 하면 사라지는 부질없는 것.’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행복했던 시간을 행복했던 시간 그대로 간직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오르막길 뒤엔 내리막길이 있듯이, 행복 뒤엔 반드시 불행이 뒤따른다는 생각이 행복했던 시간마저 행복하지 않았다고 믿고 싶게 만들었을 것이다.
시곗바늘 소리가 유난히 크던 어느 날은 또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아무도 모르기에 답을 가르쳐주지 못했고 내 삶이기에 스스로 해답을 찾아야만 했다. 확신이 없기에 늘 흔들렸으며, 누군가 잡아주길 바라며 손을 허공에 내저어야 했다. 처음 살아보는 인생이라서 완벽하진 않더라도 비슷한 정답을 찾기 위해 나뿐만 아니라 우리는 모두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나에게 가장 크고 강한 적은 나이다.’ 살면서 나를 괴롭히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도 나 자신일 때가 가장 많았다. 생각해보면 ‘나의 삶’이라는 연극에서 조연이자 주연은 나였고 총 책임자도 나였다. 상황 탓도 남 탓도 할 것 없었지만 탓할 무언가를 찾아 짜증을 내는 ‘나’ 옆에는 늘 ‘나’밖에 없었다. 나는 늘 나의 슬픔을 다른 사람과 비교해왔다. 그렇게 나를 위한답시고 하는 행동은 나를 더욱 옥죄어왔다. 괜찮다고 자신을 다독이며, 누구나 그렇듯 이겨내야 하는 거라고 채찍질을 하며 나를 아픔에서 무디게 만들려 노력했다. 어쩌면 무뎌졌다고 믿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일기장에 담임선생님은 늘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어줬다. 하지만 하나둘 나이를 먹으면서 ‘참 잘했어요’ 도장은 사라지고 빨간 자국만이 남았다. 어쩌면 이 감정도 ‘참 잘했어요’ 도장의 부재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난 요즘 자기계발서를 자주 읽는다. 단순히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사놓고 읽지 않는 책들도 많지만, 그 책은 제목 자체로 나에게 힘이 되었고, 위로가 되었다. 내가 나를 격려함에는 잘하고 못하고가 없다. 참 힘들었구나. 참 애썼구나. 그래서 지쳤구나. 스스로가 알아주고 이유 없이 응원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삶이어야 한다. ‘물이 고이면 썩는 것처럼 감정도 마찬가지다. 환기가 안 되면 마음에 차곡차곡 억누르기만 해왔던 감정이 썩기 시작한다.’ 양창순의 <당신 참 괜찮은 사람이야>라는 책의 한 구절이다. 나는 묻고 싶다. 지금 당신의 감정은 환기가 잘 되고 있는지.


하채영
(학술부 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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