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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론

Black Lives Ma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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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ck Lives Matter’(흑인의 목숨이 중요하다, 이하 BLM)운동은 2012년 귀가하던 10대 흑인 소년 트레이번 마틴을 총으로 쏘아 죽인 백인 자율방범대원 지머맨이 정당방위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2013년에 소셜미디어에 #BLM이 등장하면서 시작됐다. 이 운동은 2020년 위폐 사용 혐의를 받던 조지 플로이드라는 흑인이 체포과정에서 백인 경찰관에게 무릎으로 목을 2분 이상 짓눌려 질식사한 사건 이후 전국적 저항운동으로 발전했다. 이 운동을 이해하려면 미국에서 흑인이 차별받은 역사를 알아야 한다.

미국에서 흑인의 차별 문제는 미국의 역사만큼이나 뿌리 깊다. 17세기 후반부터 버지니아주의 담배 산업이 번창하면서 값싼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자 백인무역상들이 아프리카의 흑인들을 잡아와서 노예로 팔기 시작했다. 목화 생산이 큰 비중을 차지했던 미국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흑인 노예들이 급증했다. 반면에 흑인노동력이 필요하지 않았던 북부에서는 계몽주의의 영향과 독립전쟁을 거치면서 노예제의 부도덕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고 북부의 많은 주들이 노예제를 법으로 금지했다. 하지만 1789년 헌법제정자들은 남부를 달래기 위해 헌법에 노예제에 대한 언급을 삼가고 간접적으로 노예제를 용인하는 규정을 두었다.

노예제를 둘러싼 북부와 남부의 대립이 격화되는 와중에 1857년 연방대법원은 수치스런 판결을 선고한다. 흑인 노예인 드레드 스콧이 백인 주인을 상대로 제기한 ‘드레드 스콧 대 샌퍼드’판결에서 대법원은 흑인들은 노예이든 자유인이든 간에 미국 헌법상 시민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미국 헌법은 흑인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았고 흑인에게 어느 정도로 자유인으로서의 권리를 인정할 것인지는 각 주에서 알아서 할 문제라고 보았던 것이다. 이 판결을 비판하면서 전국무대에 등장한 정치인이 링컨이다.

1861년 3월 링컨이 대통령에 취임하기도 전에 남부의 7개 주는 연방을 탈퇴하였고 남북전쟁이 발발하였다. 전쟁이 장기화되자 1863년 1월 링컨은 노예해방을 선언했다. 그 선언이 순수하게 인도주의적인 관점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다. 남부의 흑인 노예들을 북쪽 군대로 유인할 군사적인 필요성과 남부연합과 협력하고 싶지만 노예 문제로 주저하던 프랑스와 영국이 개입하지 못하도록 쐐기를 박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하지만 노예해방선언은 재선을 앞두고 노예해방에는 반대하지만 연방의 존속을 위해 링컨을 지지했던 주전파 민주당원들의 등을 돌리게 할 우려가 있었다. 여기에 링컨의 위대성이 있다.  

종전 후 흑인 지위 향상을 위한 각종 법률이 통과되었다. 남부는 이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작업을 진행했고, 1877년 남부 3개 주의 대선 투표 결과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틸든 헤이스 타협안’을 통해 공화당의 헤이스 후보에게 선거인단을 몰아주어 그를 당선시키는 대신에 연방이 남부에서 손을 떼게 했다. 그 이후 남부는 노골적으로 흑인들의 투표권을 제한하고, 백인들과 공공시설을 같이 이용하지 못하게 하는 이른바 ‘짐 크로우’법률들을 통과시켰다. 1896년 연방대법원은 치욕적인‘플레시 대 퍼거슨’판결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흑백분리 정책에 대해서 흑인들에게 ‘분리하더라도 동등한’ 기회를 제공한다면 합헌이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백인 시설과 비교도 되지 않는 흑인들의 열악한 시설을 외면했을 뿐만  아니라 흑백 분리가 가지고 있는 근원적 차별성을 무시했다.

드디어 1954년 연방대법원은 ‘브라운 대 캔자스 토피카 교육위원회’ 사건에서 전원일치로 초·중등 공립학교에서 흑백분리 그 자체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재판과정에서 사회학자인 클라크 박사는 전문가 증인으로 출석하여 ‘흑인 인형, 백인 인형’실험을 통해서 흑인 아이들 대부분이 “백인 인형을 가지고 싶다, “백인 인형이 착한 인형이다”라고 답변한 사례를 들어 흑백분리가 흑인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설명했다. 판결 선고 후 남부는 격렬하게 저항했고, 실제로 위 판결이 집행되기까지 수많은 충돌이 있었다.

1960년대 미국은 흑인민권운동가인 마틴 루서 킹 목사와 말콤 X의 암살 등 피비린내 나는 혼란기를 겪으면서 조금씩 흑백통합을 이루어갔고, 2008년 마침내 오바마가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하지만 그의 당선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흑백차별이 많이 사라진 것 같지만 형사사법에 있어서 흑인들은 불균형적으로 많이 처벌받고 있다. 통계적으로 흑인은 마약의 12%를 소비하지만, 마약사범 처벌자의 70%가 흑인이라고 한다. 흑인 청년들은 늘 백인 경찰관의 요주의 대상이다. 인종주의가 내면화되어 남아 있는 것이다. 게다가 트럼프의 인종주의적 언행이 백인 경찰관들의 공격적 법집행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백인들의 잠재된 우월의식과 흑인들의 뿌리깊은 피해의식을 해소하기에는 갈 길이 멀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BLM 운동이 전개된 것이다.



정상환 변호사

(전 주미대사관 법무협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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