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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기록관-우리가 몰랐던 경북대 이야기

20. 대구사범학교 내지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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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보고서를 읽고 쓰는 형식은 같은 기분인가 보다. 1930년대 대구사범학교 학생들의 내지(일본)여행기는 지금 대학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답사 보고서 기록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참가인원 명부부터 전체일정, 여행의 목적 제시, 그리고 여행지 개요와 감상으로 이어지는 본문 내용까지도 익숙한 패턴으로 구성되어 있다. 때문에, 특별히 언급하지 않으면 최근 몇 년 전에 쓴 여행기인가 하는 착각도 불러일으킨다. 본문 사이에 적절하게 배치된 삽화와 각각의 지역 여행을 마무리하며 하이쿠 등을 인용한 간략한 감상평 역시도 매우 감각적인 블로그 글을 연상시킨다. 특히 대구를 출발하며 '최단기간에 최대의 수확을 얻는 것이 우리들이 현명하게 가져야만 하는 사명이다'라는 비장한 각오와 함께 기차 차창밖으로 보이는 초록빛 가득한 봄 풍경을 菜の花や月は東に日は西に(유채꽃이여, 달은 동쪽에 해는 서쪽에)라는 요사 부손의 하이쿠 인용으로 마무리한 문장은 상당한 지적 능력을 자랑한다. 요사 부손은 에도 중기에 활동했던 시인으로 당시에는 크게 평가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1800년대 후반 일본에서 근대화가 시작되면서 일본 전통 장르인 하이쿠가 마사오카 시키를 중심으로 근대적 시로 거듭날 때 화가적인 사실적 묘사에 바탕을 둔 요사 부손의 시는 새로이 평가받았다. 이런 점에서 다른 사람도 아닌 요사 부손의 하이쿠가 인용된 것은 리얼리즘에 대한 일본만의 독특한 서구 이해가 식민지 조선에도 이식되어 지식인들에게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음을 의미한다. 대견하면서도 조금은 낯설다.

몇 가지 눈에 띄는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로 일본어 문장이 매우 뛰어나다. 글쓴이가 일본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일본인에게 확인도 해 보았지만 역시나 유려한 일본어 문장 구사에 놀라기까지 한다. 물론 이 여행기를 쓴 학생은 태어났을 때부터 조선이라는 나라는 없었을 것이다. 식민지 조선이며, 주변 사람들 모두 조선어를 쓰는 환경에서, 조선어가 모국어이기 하나 주된 교육은 일본어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고등교육을 받아 이중언어자(Bilingual)로서 완벽한 모습이다. 대부분의 이중언어자들은 하나의 언어만 고급수준이거나 고등교육을 받은 모국어자(Native Speaker)들에 비해 두 개의 언어 모두 수준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기에 새삼 그의 조선어 문장은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범학교의 특성상 조선어 문장까지 완벽한 식민지 조선의 앨리트가 연상되지만, 그런 너무나 부족함이 없는 모습에서 오는 학습 능력에 감탄을 금할 수 없으면서도 조금은 씁쓸하기까지 하다. 1945년 해방을 생각하면, 식민지의 시간이 조금만 더 흘렀더라면 한국어와 한글은 완전히 잊혀 버리지 않았을까?

두 번째는 노조미와 히카리라는 열차 이름이다. 내지 여행을 마치고 연락선을 통해 부산에 도착한다. 그리고, 비로소 부산을 여행한다. 갈 때가 아니라 올 때이다. 역시 내지가 우선이었던 식민지 조선의 현실이 반영된 결과일까? 어쨌든 이들이 부산을 여행하며 대구로 오는 길에 언급되는 열차의 이름이 노조미와 히카리이다. 노조미와 히카리? 이건 현재 일본의 고속철도 이름이기도 하다. 일본도 아니고 조선에서 이런 열차 이름이? 하는 의문에 조금 찾아보았다. 역시 식민지 조선에서 제국으로 가는 철길을 달린 열차 이름이었다. 1905년까지 급행 정도로 불리던 열차는 이후 융희호, 히카리, 노조미, 아까스키 등의 이름을 갖고 있었으며, 1946년 일제로부터 해방된 이후 해방자호라는 우리말 이름의 첫 열차가 등장하게 되었다고 한다. 조선을 달린 노조미와 히카리라니. KTX 산천이 새삼 고맙고 아름답게 되뇌어진다.

세 번째 언급할 것은 여행지의 특징을 나타내는 삽화가 보통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연락선, 사람, 기차, 공장, 공원, 동물, 거리 모습 등이 때로는 간결한 스케치로 때로는 상세한 소묘로 등장하고 각각의 여정이 기하학 기호를 활용한 안내길 형태로 제시되고 있다. 이들 삽화는 여행지에 대한 기분과 그 당시 풍경이 자세히 전해지는 효과가 있어, 지금이라도 충실한 여행안내 블로그로 활용 가능할 정도의 완성도이다.

네 번째 인상 깊은 것은 역시 수학 여행팀의 체계성이다. 사전에 8개의 팀을 구성하고 기록계, 회계, 위생계로 편성된 여행관리팀을 두었으며, 각각의 팀과 개인이 담당해야 할 보고서 내용까지 준비하였다. 특히 개인에게는 귀국 후 여행일기를 제출하도록 하였으며, 특히나 잘 정리해서 낼 것을 주문하고 있다. 체계적인 동선에 따른 여행계획과 그것을 기록한 보고서 형식이 내지를 향한 수학여행의 목적에 너무나 충실해 보인다. 이러한 기록들을 살펴보면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각 도시의 인구라든가 교통, 산업시설에 대한 기본정보는 어떻게 조사하여 기록할 수 있었을까? 현지에서의 자료? 사전 조사? 조선총독부 등에서 제공한 자료가 우선이지 않았을까 하는 추론과 함께 작은 기록까지도 학습하고 제국의 식민지로서 교육받는 실상이 그대로 전해져 다시금 씁쓸하다.

다섯 번째는 인솔 교원까지 약 100여 명의 인원, 그리고 11일 정도의 기간이 그 규모 면에서 놀랍다. 경비는 어떻게 마련한 것일까? 기차와 연락선을 이용하여, 대구에서 부산, 시모노세키, 오사카, 도쿄, 큐슈, 다시 시모노세키, 부산, 대구에 걸친 대장정은 지금 그 루트를 따른다면 한 명당 최소 100만원 정도로 계산해도 총 예상 비용이 1억이다. 과연 그 가치는 어디에 있었을까? 하면서도 모골이 송연해진다.

재미있는 기록이었다. 보고서 형식의 여행기록이라는 특성상 문장은 단순 간결한 문체였지만, 그러한 문장에 비해 여행자의 감정을 엿볼 수 있는 삽화와 인용된 시구, 짧은 감탄문의 조화는 이중언어자로서 식민지 조선의 일본 제국 교육을 담당해야만 하는 모순적 감각을 살짝 엿볼 수 있다. 익숙함과 낯섬, 감탄과 슬픔이 교차하는 시간이었다.



▲대구사범학교 내지(일본)여행록 표지(1938)



▲대구사범학교 일본여행록 내용 중 일부(동경의 명소 삽화 및 설명 기록)(1938)



조헌구 교수(인문대 일어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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