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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기록관-우리가 몰랐던 경북대 이야기

37. 『경대학보』 : 신도 없고 예언자도 없는 시대, 새로운 길을 열다.

1954년의 대구 풍경을 담은 사진이 있다. ‘아담’이라는 이름의 미국인 선교사가 1954년부터 1955년까지 대구에 머물면서 찍은 이 사진에는 그 시절 대구의 모습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1954년은 한국전쟁이 끝난 바로 다음 해였다. 대구는 전쟁의 포화를 직접 겪지 않아서 전국 곳곳에서 몰려든 피난민들로 북적댔고 다른 도시보다 빨리 재건을 향한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사진에는 이 움직임이 그대로 담겨 있다. 문을 연 서문시장의 포목점들, 교모를 쓰고 줄지어 서 있는 학생들, 물을 받으러 나온 중년 여인들. 미군이 주는 배급을 얻기 위해 올망졸망 미군들 앞에 모여선 어린아이들의 모습이 전쟁의 상흔을 보여주는 듯해서 안타깝기도 하지만 잃어버렸던 일상이 활기차게 시작되고 있었다.
『경대학보』가 발행된 것은 국가 재건의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던 1954년 12월이다. ‘학보’라고 해서 지금과 같은 신문이 아니라 291쪽이나 되는 분량으로 이루어진 종합학술지였다. 당시 경북대학교는 농과대학, 문리과대학, 사범대학, 법정대학, 의과대학 등 모두 5개 단과대학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각 단과대학의 교수와 학생들이 쓴 학술적 글이 『경대학보』의 주를 이루고 있다. 독자들에게 틈틈이 휴식을 주기 위해서였을까. 많지는 않지만 시, 소설이 딱딱한 학술적 글 사이에 함께 실려있다. 
국문과 강사 유치환과 문리대 영문과 삼학년생 김윤환이 시를, 사범대 국어과 재학생 문희자가 소설을 싣고 있다. 청마 유치환은 누구나 알 듯 한국의 대표적 시인이며, 김윤환은 훗날 한국 정치사의 최전선에서 활약했고, 문희자는 숙명여고 교사로서 교육자의 삶을 살았다. 노련한 정치가와 교사라는, 참으로 다른 삶의 여정을 걸어가지만, 이십 대의 그들은 문학도로서의 꿈을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김윤환의 경우 시를 쓰던 대학 시절의 그를 생각하면, 정치계를 오가면서 가파른 삶을 살았던 정치인으로서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경대학보』의 정체성을 보여준 것은 어려운 전공지식들로 이루어진 학술적 글들이었다. 
“우리는 지금 신도 없고 예언자도 없는 시대에 살아야 할 운명에 놓여있다.” 사범대 사회과학과 3학년생 강문규는 『경대학보』 창간호에 「인문학적 사회과학의 시도」라는 제목의 글을 실으면서 막스 베버의 이 말로써 글을 시작하고 있다. 4백만 명이 목숨을 잃은 참혹한 전쟁을 겪으면서 누가 감히 신의 존재를 말할 수 있었을까. 이유도 없고, 납득할 수도 없는 수많은 죽음을 마주하고 난 그 지점에서 신과 예언자에 대해서 그 누구도 말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신이 부재하는 시대, 신의 자리를 누가 대신할까?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이 질문에 직면하고 있었다. 『경대학보』 창간호에 게재된 수많은 글의 저자들은 그 역할을 인간인 자신들에게 부과하고 있었다.
경북대학교의 교수와 학생들은 이처럼 전쟁 직후 혼돈의 한국 사회를 이끌어나갈 지식인으로서의 강한 책임감을 공유하고 있었고 『경대학보』의 창간은 바로 그 의식의 결과물이었다. 이를 증명이나 하듯 『경대학보』에 실린 글들의 제목에서는 자유로운 새 질서 수립을 의미하는 ‘자치’, ‘자유, ‘재건’, ‘시도’와 같은 단어들이 빈번하게 눈에 띈다. 한국 아나키즘 사상의 대가였던 철학과 하기락 교수가 쓴 「대학의 자유」라는 제목의 ‘권두언’에는 이 시기 경북대학교 교수와 학생들이 이끌어 가려고 했던 대학의 형태가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하기락 교수는 대학이란 국가적 토대 안에서 국민의 현실적 수용에 그 존립 근거를 둔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국가가 착오된 토대 위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 아니 국가란 그 자체가 착오인지도 모른다는 것’을 충분히 감안해야 함을 강조한다. 이 연장선상에서 그는 ‘국가와 국민의 이름 아래 정치권력에의 종속을 대학에 요구한다면 이는 그지없는 혼란과 위험을 초래할 것’이라며 정치권력에 의한 대학 자율성의 억압을 명백히 거부하고 있다. 대학이란 사회적 권위로부터도, 정치적 조직으로부터도 독립되어 자유로운 정신으로서 존재해야 한다는 점을 강력하게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하기락 교수의 ‘권두언’만이 아니다. 학생자치를 통한 민주 생활의 실천을 주창한 박관수 교학처장의 「학생의 자치」, 유교이데올로기의 전제를 벗어나 사상의 자유를 구가한 송강 정철의 문학세계를 다룬 김사엽 교수의 「송강의 문학정신」 , 그리고 인간의 자유의지를 철학적으로 규명한 김상현 교수의 「자연법칙과 자유」 등, 『경대학보』 창간호의 글들이 지향하는 바는 동일하다. 인간의 자유와 평등이다. 경북대학교는 바로 이 정신을 기반으로 설립된 학교이며, 이는 『경대학보』를 지탱하는 핵심적 의식이기도 했다. 『경대학보』의 창간으로부터 칠십여 년이 흘렀다. 단과대학의 수도 늘어났고, 전공별로 다양한 학술지가 발행되고 있다. 모든 것이 풍요로워진 이 시대, 경대인들은 칠십여 년 전 선배들이 지녔던 자유를 향한 순정한 정신을 얼마나, 잘 이어가고 있는 것일까.


▲사진 1. 경대학보 창간호 표지(1954)


▲사진 2. 경대학보 창간호 목차(1954)


정혜영 초빙교수
(교육혁신본부 글쓰기 교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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