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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현메아리

MBTI : 은밀하게 파헤쳐지는 영혼들에 대하여

MBTI 뭐야?”

이 질문을 살면서 단 한 번도 들어 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나는 어림잡아 일 년, 혹은 이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거의 매번 MBTI에 관한 질문을 들었다. 이제는 익숙하다 못해 지겨울 지경이다. 그러나 나 역시도 나와 너무도 잘 맞거나, 혹은 반대로 너무도 안 맞는 사람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입에서 이런 질문이 튀어나온다. ‘너 혹시 인프제야?’ ‘너 엔팁이지?’

MBTI마이어스-브릭스 유형 지표의 줄임말이다. 쉽게 말하면 성격유형검사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한 번씩 단체로 실시하던 심리검사랑 엇비슷하다. 외향형이면 E, 반대로 내향형이면 I. 직관형이면 N, 반대로 현실주의형이면 S. 이런 식으로 네 가지 지표 알파벳이 조합되어 성격 유형을 만드는 방식이다. MBTI 테스트 사이트에서 60여 개의 질문에 동의 혹은 비동의를 체크하면 나의 성격을 16가지의 유형 중 하나로 자동으로 진단 내려 준다. 어느 순간부터는 유형별로 이름들도 귀엽게 줄여 부른다. INFJ는 인프제, ENTP는 엔팁, 이런 식이다.

사실 굳이 설명해 줄 필요도 없다는 걸 안다. 요즘 세상에 본인의 MBTI를 모르는 이십 대는 거의 없을 테니까. 편견일 순 있겠으나, 사실은 사실이다. 나 역시 흘러가는 유행에 몸을 맡기며 MBTI를 처음 접했었기 때문에 정확한 계기는 잘 알지 못하지만, 이 성격유형검사의 특별한 무언가가 한국인들의 관심과 흥미를 제대로 자극했다는 사실만은 잘 안다. 인터넷에 알파벳, 네 글자를 치기만 해도 별의별 내용이 다 나온다. MBTI 별 심리상담 링크, 추천 선물이나 글귀, 오늘의 운제 페이지까지 각양각색이다. SNS에 들어가도 마찬가지다. MBTI를 매개로 한 콘텐츠는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의 탐색 탭을 비롯한 온갖 곳에서 숱하게 등장한다.

나는 사실 이 글을 읽는 이들이 MBTI가 무언지를 넘어서서 자신의 MBTI 유형까지도 이미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고 넘겨짚고 있다. 그러니 곧바로 질문하겠다. MBTI 테스트는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유행하는 걸까? 나의 친애하는 친구들은 고민 없이 이런 답변을 내놓았다. “재미있으니까.” 물론 맞는 말이다. 재밌고 신기하기 때문에. 그러면 조금 더 원론적으로 보았을 때, 이 심리검사가 재미있는이유는 무엇일까.

MBTI 검사는 메타인지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다시 말해 내가 나 자신을 끊임없이 하나의 캐릭터로서 객관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작업이다. 스스로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언뜻 주관적으로 생각한다는 것과 같은 말처럼 들리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지극히 객관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이어야만 반쯤 철학적이고 반쯤 일상적인 MBTI 테스트의 질문 아래서 자신을 왜곡시키지 않고 조목조목 뜯어 바라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겪는 자기 해체와 분석의 과정은 기실 뭇 심리검사와 크게 다를 게 없다. 그러나 MBTI가 특별한 이유는 따로 있다. 이 메타인지의 결론이 맞닿아 있는 지점이 다름 아닌 인간 사회, 다시 말해 공동체라는 점이다.

열여섯 가지의 성격 유형 분류는 언뜻 보면 복잡해 보이지만, 수억 명의 사람들이 고작 열여섯 개 중 하나의 성격을 가진다고 생각하면 그리 많지도 않다. 십육분의 일 확률로 특정 성격에 배정된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자신의 유형이 아닌 다른 것들을 궁금해하게 된다. 그 결과 열여섯 개 성격 유형들의 특징을 속속들이 꿰고 있는 이들이 생겨나고, 그들은 네 글자 MBTI를 들으면 그 사람의 성격에 대해 전반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믿게 된다. 그들의 검사 결과에 느낀 놀라움과 만족이 그 근거다. 관계를 중시하는 인간 사회에서 손쉽게 상대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은 확실히 매력적인 능력이다.

알파벳, 네 개로 자신을 정형화시켜드러낼 수 있다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나는 나를 실컷 파헤치고 되짚어가며 MBTI 테스트 결과를 얻어냈지만, 그 결과를 듣는 사람들은 나의 내밀한 역사와 구질구질한 사연들을 제외한 유형 그 자체의 특징만을 떠올릴 테니까. 알려주지 않은 것들마저 인정받고 이해받는 감각. 그 은밀하고 뿌듯한, 형용할 수 없는 감정. 어느새 MBTI 유형을 공유하는 것은 이유나 설명 없이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는 제언만으로 다른 이들에게 나라는 사람의 A부터 Z까지를 납득시킬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 되었다. 나의 경우 스무 살 무렵에 처음 테스트해 봤던 것 같은데 스물셋이 된 지금도 ‘ENFP(활동가)’라는 결과가 나온다. 몇 번을 반복해도 마찬가지다. 공교롭게도 페이지 아래의 설명은 이랬다.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지도자 역할을 맡게 될 때가 많으나, 처음의 열망이 사그라들고 나면 이전에 중요하게 생각했던 일을 더는 신경 쓰지 않게 될 수도 있습니다.”고백하자면 이건 작년에 학과 학생회장으로 일하며 매 순간 통감했던 사실이다. 나의 스물세 해 인생을 전문 상담사도 아닌 심리검사 페이지가 이렇게나 정확히 집어내다니. 다른 내용들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다. 제작자가 아예 내 일상을 훔쳐본 게 아닐까 싶은 정도로 아프게 공감되는 내용들의 향연이다.

내가 개중에서도 꽤 투명한 사람인지, 나를 두어 번 본 사람은 내가 먼저 말해 주지 않아도 내 성격 유형을 쉽게 알아맞힌다. 얼굴이나 하는 행동에 알파벳, 네 글자가 쓰여 있기라도 한가. 우스운 일이다. 요즘은 누군가가 MBTI를 물어보면 아주 잠시 뜸을 들였다가 조금 쑥스럽게 고백하듯 ENFP라고 속삭인다. 열에 아홉은 그럴 줄 알았다며 씩 웃는다. 그 순간 명치께를 관통하는 어떤 희열. 나의 유형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맞아 너 완전 엔프피 같아, 하고 내게 증언해 주는 순간, 밖의 나와 안의 나는 비로소 같은 사람이 된다. 내가 인지하는 나와 남이 인지하는 내가 같다는 사실이 파헤쳐지는 짜릿함을 선사하는 것이다.

숨김의 시대다. 모두 자신의 내밀한 것들을 보여주기보다는 안으로 꽁꽁 감추려 하는 오늘날 MBTI 성격 유형은 자신을 가장 세밀하게 되돌아보고 파헤친 결과이고, 동시에 손쉽게 공유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묘한 신성성을 가진다. 연금술 하듯, 인생의 수많은 순간이 12분간의 검사 시간 동안 나를 스쳐 지나고, 가장 선명히 남은 시간의 파편들이 모여 깔끔하고도 진한 네 글자 알파벳으로 연단다는 것이다. 이것은 나의 정수이자 나의 명함이다. 가장 내면의 것이고 가장 외면의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MBTI를 알려 주는 이들의 목소리에는 숨겨둔 내면을 살짝 드러내 보여주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은밀한 기쁨이 선명한 농도로 섞여 있다. 남의 손이 닿지 않은 내면의 성역이 명명되고 공인되는 순간이다.


김진솔 (인문대 국어국문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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