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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놀이터

<우아한 거짓말> : 괜찮다고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

언젠가 집단에서 소외되는 순간 사람이 느끼는 고통은 물리적으로 팔 한쪽이 떨어져 나가는 고통과 비슷하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과학적인 검증을 떠나 참 적절한 비유다. 그저 팔 한쪽이 아닌 머리털 끝부터 발끝까지 세포 하나하나가 절멸해 공기 속으로 흩뿌려지는 느낌이 좀 더 어울리겠다. 그저 사무치게 고통스러워 심연으로 무한히 빠져가는 듯한 상태와 말하기도 버거운 시간 속에서 사회적 생기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그렇게 어둠 속으로 하나둘 사라져버린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한 시기가 있었고 비슷한 시기를 보내던 사람 곁에서 무심히 그들을 지켜본 시간도 있었다. 고립 속에서 버둥대던 순간도, 남의 고립을 지켜보던 순간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착잡함의 강도는 엇비슷했다. 은연중에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위계와 질서 그리고 불필요한 도태로 위안으로 삼는 수많은 표정이 가증스러워였을까. 하지만 내가 간사한 건지 그저 사람이 간사한 건지 나의 과거를 생각하지 못한 채 고립된 이에게 따뜻한 손 한 번 내밀어 주지 못했다. 이유는 다양했다. 굳이 그들을 위해 내 감정의 여유분을 내어주기 귀찮아서 혹은 그들과 비슷한 취급을 받기 싫어서. 그렇게 사람들은 부대껴 살아간다. 이렇게만 생각하니 세상은 아름답다, 살만하다는 말들에 끈질긴 반문을 던지고 싶다. 그래도 불구하고 삶은 정말 아름다울까.
 <우아한 거짓말>은 미처 세상에 발을 담그기 전에 사라져버린 천지의 정체성을 위로해 주는 영화다. 사건의 인과성이 확증되어야 실재하는 현상이 정립되어 개인에게 위로를 내어주는 시간이 존재한다. 천지는 마음속에 ‘나’라는 존재가 왜 이렇게 되어야만 했는지에 대해 정당성을 품지 못하고 죽었다. <우아한 거짓말>은 그 정당성을 부여해 생전 천지의 시간을 사후에서 늦게나마 위로해 준다.
 천지가 생각하는 그녀의 존재 의미는 고통스럽게 이어졌던 일련의 사건들로 점점 퇴색된다. 사건의 주동자는 천지의 반 친구들과 핵심 인물 화연이다. 너무나 가까워야 할 사이에서 철저히 고립되어버린 천지는 점점 삶을 살아갈 동력이 희미해진다. 물을 주지 않아 점차 시들어버리는 꽃처럼 그저 바라보고 있기엔 너무 가슴 아픈 시간이 지나간다. 그 어린 소녀가 왜 방 안에서 목을 매야만 했는지에 대한 물음에 그렇게 영화는 성실히 답을 내어준다.
 외로움의 수렁에서도 그저 한 사람만 곁에 있으면 살아가는 게 인간이라면 미라의 존재는 그래서 더 아리다. 미라가 남들보다 깊은 동정심을 가져 잠시나마 천지의 곁에 있어 준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미라도 결국 천지 곁을 떠났다. 천지의 반 친구들과는 다른 이유였지만 미라가 천지 곁을 떠나면서 영화는 비극의 확실한 기폭제를 보여준다. 천지가 미라와 맺은 안정은 미라의 말 한마디에서 한순간에 무의미한 시간으로 전락하였고 피어난 천지의 절망은 담벼락 옆 아름답게 피어난 넝쿨과 대비돼 더 비극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미라를 욕하고 싶진 않다. 마음의 거처를 상실했던 천지에게 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다가온 미라의 존재는 죽음을 초월한 연대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희망과 연대 안에서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는 많은 이들이 있기에 과정이 서툴러도 우리 사회에서 미라는 꼭 필요하다. 그저 서툰 과정에서 생긴 상처라 믿고 싶다.
 돈이 부족한 사람은 돈을 갈구하고 애정이 부족한 사람들은 집착적으로 애정에 갈구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느끼는 아픔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자기 자신을 완전히 드러내는 것도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천지의 아픔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털실 뭉치는 천지의 마음속 이야기를 깊이 싸매다 천지의 죽음 이후에 겨우 그 속을 드러낸다. 생전 그 털실 뭉치가 한번 풀어진 적이 있었는데 바로 미라가 천지와 친하게 지냈을 적, 미라가 그들의 아지트까지 그 털실 뭉치를 풀어 헤치며 뛰어갔던 시간이다. 앞서 말한 미라의 이야기와 결부되어 생각해 보면 안타까움이 더해진다.
추상박은 생전 천지에게 가끔은 애먼 사람에게 속 얘기를 하는 순간도 있다며 다독였다. 아마 본인의 상처에서 비롯된 진실한 위로였을 것이다. 참 위로에 인색한 사회이기에 그 말이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반목의 색채가 짙어지는 사회에서 많은 사람은 정서적으로 고독과 소외의 교차점에 있다. 가시적인 따돌림뿐만 아니라 계층과 성별, 집단끼리 척을 지어 헐뜯는 행태가 빈번히 사회에 노출되고 있다. 보고 있으면 외로운 사람들끼리 누가 덜 외로운지 다투는 것처럼 보여 꽤 부끄러워진다. 결국은 더불어 사는 사회, 누구도 혼자만의 힘으로는 버티기 어려운 세상이기에 서로의 손을 더 굳게 맞잡아야 한다. 그 근원에는 진심과 솔직함만이 자리 잡고 있다. 힘이 벅차오를 때는 버겁다고 말하는 자세와 가끔은 괜찮지 않다며 기댈 수 있는 용기가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우아한 거짓말>은 화염과 미라 그리고 천지 사이에서 끝없이 진동하는 우리의 정체성에 깊은 울림을 준다. 의문스러워도 삶은 아름답다고 굳게 믿어 살아가는 시간의 외연 안에서 공감과 연대는 한 축을 당당히 맡고 있다. 힘들어도 버티고 또 버티고 결국은 버티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아한 거짓말이 아닌 초라한 진심이 선행되어야 한다. 각자가 지닌 초라함의 파고들이 모여 함께하는 시간과 위로들 속에 서로의 상처를 진심으로 보듬어 줄 수 있는 사회로 진전되길 간절히 소망해 본다.


" 피한다고 피해질 사람 없고 막는다고 막아질 사람 없어. 뭐 대단한 박애주의자나 되는 것처럼 세상 사람 다 용서하고 사랑할 필요도 없고 미우면 미운대로 좋으면 좋은대로 그거면 충분해 그렇게 사는 거야."

김도윤(농생대 식품공학 19)
영화동아리 KOMO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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