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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기획

근대문학의 발자취, 대구문학로드

대구문학관에서 주최한 대구문학로드는 일제강점기 문단의 선구자들과 1950년대 피란 문단을 중심으로 전후 문학의 꽃을 피운 근현대 문인들의 발자취를 따라 가보는 프로그램이다. 향촌동에 위치한 대구문학관을 통해 대구 근현대 문학의 이야기를 알아보자●

2022년 대구문학관은 향촌동에 ‘대구문학로드 - 일곱 갈래 또는 하나의 길’로 ▲꽃자리 길 ▲향수 길 ▲수밀도 길 ▲구상과 이중섭 길 ▲독립과 사상의 길 ▲교과서 속 작가 길 ▲다방 길 ▲대구문학관 추천 길을 구성했다. 개별투어 또는 단체투어를 신청하면 문학 전문해설사의 생생하고 재미있는 해설과 함께 문학로드를 탐방할 수 있다. 그 중 ‘대구문학관 추천 길’을 중심으로 대구문학관에서부터 근처 문성당출판사, 264작은문학관 등 을 비롯한 문학장소와 다방들의 사연을 소개하고자 한다.

① 녹향 (대구문학관)
현재는 대구문학관 건물 지하 1층에 옮겨져 있으며 1946년 문을 연 우리나라 최초의 고전음악 감상실이다. 문화예술단체 ‘예육회’의 총무였던 이창수 대표가 회원들의 모임 장소를 물색하다가 이곳에 지하다방을 마련하여 소장하고 있던 레코드판 4백여 장을 열었고 북성로에 있는 미국공보원에서 레코드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그 당시는 클래식 음반이 대중화되지 않았던 시절로 녹향이 가지고 있던 음반들은 학생들의 교재가 됐으며, 녹향과 예육회 활동을 통해 음악계로 진출한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② 미국 공보원(USIS) 터 (중앙대로 462)
지금은 사라졌지만 해방 이후 중앙로에는 2층 건물의 미국공보원이 있었다. 6·25전쟁과 함께 대구가 군사 인력과 물자의 보급장소가 되면서 이곳은 미국의 정보를 알리는 기관이 되었다. 영화와 미술 등 미국 문화의 냉전 체제를 선전하던 기관으로, 전쟁기에는 1층 게시판에 전쟁 소식을 업데이트하여 시민들에게 소개하기도 했으며 2층 화랑에서는 전시회가 자주 열리면서 1950년대를 상징하는 문화센터 역할을 했다. 1955년 이중섭의 전시회도 이곳에서 열렸다. 이중섭 그림의 예술성을 알아본 당시 공보원장 맥타가트가 그의 그림 몇 점을 매입해 뉴욕 현대미술관(MoMA 이하 모마)에 기증하였고 모마는 이중섭의 그림을 공식 소장품으로 발표했다.

③  문성당출판사 (중앙대로 440-2)

▲문성당출판사 황소 벽화

1950년대 전쟁기 우리나라 인쇄출판문화의 산실로 사조참치의 설립자였던 주인용 대표가 설립한 출판사이다. 주 대표는 해방 이후 모든 책이 일어에서 한국어로 바뀔 것을 예상하고 출판업에 뛰어들었던 근대 지식인이다. 건물 외벽의 모자이크로 된 황소 벽화는 1960년대에 설치된 것으로 당시 화가였던 대구 출신 서식규 화백의 작품이다. 모자를 쓴 황소가 야구공을 던지는 모습이라고 한다.

④ 대지바 (북성로 104-11)

▲현재의 대지바 모습

6·25전쟁기 향촌동의 귀공자로 불리며 피란 문인들의 후원자 역할을 했던 구상 시인이 자주 들렀던 고급 술집이었다. 당시 그가 향촌동 술집 골목에 뜨는 날이면 가난한 예술인들도 마음 놓고 술을 마실 수 있었다고 한다. 비교적 형편이 넉넉했던 구상 시인이 술도 사주고 외상값도 갚아주며 동료들을 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현재 건물은 리모델링 준비 중이다.

⑤ 백록다방 (북성로 106-6)

당시 명문이었던 경북여고 출신의 지식인 정복향과 안윤주가 경영하던 다방이다. ‘음악은 르네상스에서, 차와 대화는 백록에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주인들이 예술과 문학에 조예가 깊어 많은 문인과 예술인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백록다방의 출입문에는 동영화가 청전 이상범이 목각한 나무간판이 걸려 있었다고 한다. 특히 이 다방은 이중섭이 은지화를 그리던 곳으로 전해진다. 

⑥ 꽃자리다방 (북성로 107)

6·25전쟁 당시 북성로에 있었던 꽃자리 다방은 피난 온 문인들의 안식처였다. 이곳은 시대의 광기를 치유하는 소통의 장이었으며 살아있음을 증명하고 열정을 꽃피운 문학의 산실이었다. 꽃자리다방은 구상의 시 「꽃자리」에서 이름을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상 시인이 몸소 전쟁의 참화를 겪으며 쓴 시집 「초토의 시」 출판기념회가 바로 이곳에서 열렸는데, 「초토의 시」 표지화는 구상과 각별한 사이였던 화가 이중섭이 그렸다고 한다.

⑦ 르네상스 (경상감영1길 62-9)

1951년 1·4후퇴 이후 문을 연 음악감상실 르네상스는 호남 갑부의 아들 박용찬이 남하하는 피란길에 레코드 4천여 장을 싣고 와 꾸린 곳으로 전해진다. 육군본부와 UN군사령부 등이 대구에 주둔하던 시절, 미국의 음악전문지 에튀드는 “카네기홀도 르네상스 다방보다 청중을 많이 모으진 못했을 것이다”라고 소개했다. 르네상스에 울려 퍼진 첫 곡은 바흐의 ‘마태 수난곡’이었다. 피란 시기의 문화 살롱이었던 르네상스에는 많은 예술인들로 북적거렸다고 한다.

⑧ 백조다방 (북성로 101-4)
1947년 1월 문을 연 백조다방은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 ‘백조’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 주인 이삼근은 아들인 피아니스트 이공주를 위해 다방에 그랜드피아노를 마련해 두었는데 이러한 이유로 백조다방은 문화예술인들의 사교장이자 근처 음대 학생들의 연습 공간으로도 애용됐다. 특히 익숙한 동요「봄나들이」 를 작곡한 권태호는 이곳에서 살다시피 하였다고 한다.

⑨ 264작은문학관 (북성로1가 48-1)

▲264작은문학관 내부 이육사 시인 사진 


▲264작은문학관 외부 간판


안동에서 태어났지만, 대구에서 삶의 절반을 보낸 독립운동가 이육사 시인과 그의 문학세계를 기리는 공간이다. 시인의 본명은 이원록인데 대구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했을 때 수인 번호였던 ‘264’를 따서 호를 ‘육사’로 지었고 이는 필명이 되었다. 이러한 이름을 따서 경북대학교 박현수 교수 형제가 ‘264작은문학관’이라 명명했다. 1층 내부에는 카페가 있으며 2층에는 이육사 시인에 대한 관련 자료와 문학을 감상할 수 있다.


고은진 기자 kej21@knu.ac.kr
편집 전하연 기자 jhy21@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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