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토마토의 성장일기 엄마 난 토마토로 태어나서 너무 좋아요 내가 요즘 만나는 고추장이라는 여자가 있는데 성격이 아주 매콤해요 우리가 몸을 섞을 때면 걔 손이 내 등을 할퀴곤 하는데 그만큼 따끔하고 알싸한 것이 없답니다 그럴 때면 난 더욱 붉은 물결에 눅어들곤 해요 엄마 내가 고추장과 아름다운 결말을 맞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너무 다르지만 하나가 되어도 기묘한 버건디빛 향기를 풍겨요 엄마 세상에는 정반대의 것들이 많이 사는데 왜 우리는 같을 수 있을까요? 나는 비누로 거품을 듬뿍 내서 샤워를 하고 고추장은 바디워시를 손으로 대강 문지른대요 엄마 똑같이 극을 사는 것들에게도 거리가 있다는 것을 믿어요? 나는 토마토로 태어난 게 증오스러웠어요 피부는 벌겋게 달아올라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고 세게 누르면 피눈물이나 흘리곤 했죠 엄마 세상 모두가 반대편에 서있어요 내 건너편에 뻔뻔하게 앉아있는 꼴이 싫어서 처음에는 눈을 감았답니다 하지만 곧 모든 것은 다르니까, 세월이 흘러도 변하는 것은 없으니까 어차피 누군가가 잘못되어야 한다면 나는 옳고 다른 것은 틀렸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이 악물고 버텨요 그럴 때마다 고추장이 생각난답니다 걔는 매콤하니까요 엄
두꺼비에게 김서현 두껍아 두껍아 내 이야기를 들어다오 네가 깊은 곳에 숨어들어 있지만 널 찾으러 깊디깊은 동굴까지 찾아왔다 두껍아 두껍아 동굴 속은 너무 습하고 안개가 자욱해 길을 찾을 수가 없구나 날 위해 한 번만 울어주겠니 두껍아 두껍아 이곳은 울림이 웅장해 한 번의 외침으로 여러 곳의 메아리를 만들어내는구나 너의 울음소리가 사방에서 들린다 두껍아 두껍아 네가 내 이야기를 전해 듣고 이리로 와주었구나 이제 나는 눈을 감으련다 두껍아 두껍아 눈을 떴더니 앞에 너는 없구나 동굴 속 취기에 헛것을 보았나보다 두껍아 두껍아 동굴 속 미라가 되긴 싫구나 날 잡아먹으려 때를 기다리고 있는 거라면 난 걸음을 멈추겠다 두껍아 두껍아 나는 다시 양지로 나가련다 가져온 모든 짐은 여기 두고 떠나련다 두껍아 두껍아 내가 떠나거든 먹이가 사라졌다 한탄하지 말고 대신 내 짐들을 먹어다오 부스러기 한 톨 흘리지 말고 모두 해치워다오 안녕하십니까, 저는 국어국문학과에 재학 중인 16학번 김서현입니다. 이번에 신문에 올리게 된 시는 제가 시 창작 학회 한비를 하면서 ‘술’이라는 시제를 받았을 때 썼던 시입니다. 두꺼비는 독을 품고 있는 무시무시한 친구이기도 하고, 참이슬의 마크이기도
3월 11일의 인터뷰 김민경 간밤에 누워있던 전기장판이 뜨거웠어요 그래서 눈을 뜨자마자 커피를 끓여 마셨죠 냉장고엔 유자청과 토마토주스 콜라가 들어있었지만 전 단 걸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일기장 속으로 꿈을 쓸어담았다가 다시 흩뿌린 것도 그즈음이었군요 그 일기장 속 헤맸던 꿈에서 나는 헤엄치지 못하는 사람이었답니다 그럼에도 물 위에서 춤을 췄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모래로 머리를 감고 진흙으로 화장을 하게 되었지만요 나는 망원경을 가지고 싶어요 그럼 바닷속을 더 자세히 살필 수 있을 테니 하늘에는 사실 별 관심이 없어요 매일 뜨고 지는거 뿐인 것 같아서요 지구가 둥근 게 그 이유라구요? 말도 안 되는 소리 지구는 테이블 모양인걸요 망원경을 손에 들고 바닷속을 걷다보면 언젠간 아래로 떨어져 우주로 갈 수 있을 거에요 그 속에서 나는 습관적으로 손톱을 물어뜯어 주변으로 날려 보내요 그래서 그곳에는 여러 개의 손톱 달이 뜨곤하죠 그러고 보니 간밤에 누웠던 전기장판 위에서도 몇 개의 손톱 달을 봤어요 등을 따끔따끔 찔러 탈탈 털어버리긴 했지만요 장판은 뜨겁고 방 공기는 차가워서 이불 속은 종종 습기가 차곤 해요 그럼 이불 밑 누워있는 저는 흠뻑 젖곤 한답니다 꿈과
*지난 1590호 ‘시가 흐르는 경북대’에서 편집상 문제로 시 전문이 실리지 않아 다시 게재합니다. 꼬리 이재섭 나비는 우물 속 물고기를 잡아먹고 살았다 어둠과 달빛이 보름으로 조각나는 바닥에서 물음표 모양으로 휘발하는 울음소리 그 동선을 따라 부드럽게 휘어지는 꼬리 처음 보았을 때부터 빛을 동경하였으나 침묵보다 소름끼치는 눈부심은 견디지 못했다 나비는 물고기의 눈을 하고 두레박 아래 숨어 꼬리를 고리처럼 걸었다 세상은 타는 빛으로 숨겨져 있어 밤에는 그을음이 남았다 우물 속 어둠은 두렵지만 익숙하였고 미지에 대한 예민함은 머릿 속에 방울을 울렸다 나비는 세상을 우물 안으로 끌어내려 담기로 했다 그는 물을 긷는 자들의 세상을 닿는 만큼씩 훔쳤다 두레박이 수면에 닿으면 어둠의 한 가운데서 동심원으로 퍼져나가고 물결은 둥근 세계의 가장자리를 울림으로 증발시켰다 우물의 바닥은 차츰 높아지고 어둠은 익숙해지고 바닥에서 일던 파문의 규칙성이 일그러질 때쯤 거꾸로 매달린 두레박은 하늘을 잃고 물고기의 숨과 비늘도 어느 세상처럼 굳었다 세상의 보이지 않는 것들은 볼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입에 문 세상은 죽은 물고기처럼 서늘했다 아무 울음소
꼬리 이재섭 나비는 우물 속 물고기를 잡아먹고 살았다 어둠과 달빛이 보름으로 조각나는 바닥에서 물음표 모양으로 휘발하는 울음소리 그 동선을 따라 부드럽게 휘어지는 꼬리 처음 보았을 때부터 빛을 동경하였으나 침묵보다 소름끼치는 눈부심은 견디지 못했다 나비는 물고기의 눈을 하고 두레박 아래 숨어 꼬리를 고리처럼 걸었다 세상은 타는 빛으로 숨겨져 있어 밤에는 그을음이 남았다 우물 속 어둠은 두렵지만 익숙하였고 미지에 대한 예민함은 머릿 속에 방울을 울렸다 나비는 세상을 우물 안으로 끌어내려 담기로 했다 그는 물을 긷는 자들의 세상을 닿는 만큼씩 훔쳤다 두레박이 수면에 닿으면 어둠의 한 가운데서 동심원으로 퍼져나가고 물결은 둥근 세계의 가장자리를 울림으로 증발시켰다 우물의 바닥은 차츰 높아지고 어둠은 익숙해지고 바닥에서 일던 파문의 규칙성이 일그러질 때쯤 거꾸로 매달린 두레박은 하늘을 잃고 물고기의 숨과 비늘도 어느 세상처럼 굳었다 세상의 보이지 않는 것들은 볼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입에 문 세상은 죽은 물고기처럼 서늘했다 아무 울음소리 없으니 꼬리는 열망의 곡선을 잊었다 눈동자에 어둠이 비추어질
profile 정해윤 I1 : 검은 색 긴 머리의 여성이며 무릎까지 오는 원피스를 입고 있으며 걸음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아 눈에 띄지 않고 마네킹과 함께 은거한다는 소문이 들림, 목격자의 증언마다 목소리가 다른 것을 보아 신분 노출 방지에 철저함.I2 : 보라색 짧은 머리이지만 성별을 밝혀진 바 없으나 세간에서는 여자로 추측, 최초 목격자의 증언에 따르면 한 손에는 빨간 코끼리 인형을 들고 말을 거는 듯이 보였으며 다른 한 손에는 임경섭 시인의 노란 시집을 들고 있었음.(제목은 알려진 바 없음.) i1 : s h e f o r g a v e h e r d o gi2 : s h e f o r g a v e i ti3 : s h e f o r g a v e h e r s e l fi4 : s h e p u n i s h e d s k yi5 : s h e b r o k e h e r b e d.저기요, 말씀 좀 묻겠습니다. 수상한 여자를 본 적 없습니까?여자는 모르겠고 이상하게 비가 오는 날만 되면 키 큰 사내가 벤치에 앉아 누군가와 통화를 하더니 거울 하나를 저 나무 밑에 묻덥디다. i6 : 한 목격자에 따르면 키가 큰 남성으로 보이기도 함. 비가 오는 날마
데미타세 -이재섭 커피가 든 컵이 있고 커피 든 컵 안 커피가 안 가득하고 아니 컵에 커피가 반밖에 안 남았구나커피 반 컵 반인 컵을 반으로 자르면 커피 가득한 컵이 아니 컵이 반밖에 안 남았구나 아니커피가 든 컵이든 컵 안 커피든 다만 잘려나간 컵 윗동이 깨질 듯 쓸쓸해서그만 텅 빈 컵이 아니 커피에 젖은 듯 물든 도넛이 될 거야 아니커피가 지루하게 반감되어 갈 때마다 거울처럼 커피 안에 숨어든 나를 본다면틈틈이 컵 안 커피를 본다면 컵을 든 나는 커피가 든 컵 안을 보면서 커피 안에 든 나를 본다면반밖에 남은 커피를 마시면서 커피에 젖은 컵을 뜯어먹으면서언젠가 커피처럼 식은 컵에 말라붙은 커피를 핥으면서도 컵 바닥에서 나를 본다면두꺼운 컵 윗동을 아니 딱딱해진 도넛을 이로 악물고는 내가 든 컵이 샘의 재질이라고 생각하면서가볍게 머금다가 넘긴 커피가 혈관을 타고 온 몸에 스며드는 쓴 맛을 생각하면서 아니컵에 든 커피가 거품처럼 남은 곳에 여전히 나를 엿보는 시선을 느끼면서내 자리가 차라리 커피 안이었으면 하고 생각하면서 다만 여전히 남은 컵 안의 시선에 샘이 나는 거야
걸음, 혹은 헤엄 나서영 눈이 시리도록 맑은 바닷속을 걸어본 적 있는가 서로 부딪혀 생기는 뽀얀 거품으로 온 마디를 적시며 기쁨에 몸을 떠는 것은 어쩌면 볼을 스치고 흘러가는 물살에 놓칠 듯 위태롭게 걸어가는 것 곡예사는 줄 위에 앉아 한껏 여유 부리며 고백한다 ‘어찌 두렵지 않겠나 다만 다른 이들은 나를 돌고래라 부르곤 한다네, 돌고래’ 저 아래에서 그가 다시 걸을까 모두가 기뻐하며 고개를 숙여보지만 보이는 것은 자신의 얼굴뿐 그는 두렵게도 당신들의 위를 걷고 있으니, 그렇지 나와 당신들은 모두 안녕하세요, 저는 국어국문학과 시 창작 학회 ‘한비’에서 활동하고 있는 나서영입니다. 수험생 시절 저에게 시는 문학적 재능을 가진 사람만이 즐길 수 있는 어려운 문학이었습니다. 하지만 한 시인은 ‘삶이란 글자 속에 시가 이미 겹쳐있다’고 말합니다. 저는 요즘 시를 쓰고 즐기면서 이를 조금씩 느끼고 있습니다. 시라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닌, 항상 우리 주변에 있는 것일지도, 어쩌면 우리 각자의 인생 전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에게 시는 무엇인가요? 돌고래, 돌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