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신문사를 처음 접하게 된 건 학교 공지사항의 수습기자 모집 때였다. 3학년 2학기에 재학 중이던 11월 초, 관심 가는 활동이 없나 학교 공지사항을 뒤적이던 차에 제일 위에 고정된 수습기자 안내가 눈에 들어왔다. 11월은 어떤 활동을 새롭게 시작하기에는 늦었다고 생각한 것도 잠시,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부터 언론인을 꿈꿔왔던 것도 아니고, 신문사의 혜택에 관심이 간 것도 아닌데 왠지 모르게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구미가 당겼다. 그 당시에는 자각하지 못했지만, 수습기자를 거쳐 정기자로서 한 학기를 보낸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기자’라는 단어에 꽂혔었던 것 같다. 어쩌면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비교적 운명이 존재한다고 믿는 편인데, 다양한 경험을 통해 정해져 있는 운명을 향해 스스로 한 걸음 다가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운명을 사랑하라’라는 명구는 운명은 정해져 있으니 체념하고 받아들이라는 내용이 아니라, 자신을 통해 표현되는 가능성의 실재화를 당당하게 인정하라는 전언이다. 이처럼 관심 가는 것들은 다 한 번씩 해봐야 하는 나에게 신문사는 잠재된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도록 다가온 운명이었다. 사실 이전에 학교 곳곳에
기자의 꿈을 꾼 지도 어느덧 9년. 기자로의 경험을 쌓기 위해 다방면으로 활동해 왔지만, ‘기자가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당당하게 외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작년 가을 3학년 2학기라는 비교적 늦게 경북대신문에 들어온 나는 언제나 기자의 사명에 대해 고심했다. ‘올바른 기자란 무엇일까?’, ‘더욱 훌륭한 기사를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들이 알고 싶어 하는 정보는 무엇일까?’ 하면서 말이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특종 보도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Washington Post.>의 기자 봅 우드워드는 “최고의 저널리즘은 경영층에 저항할 때 이루어진다”라고 말했다. 기자가 공정성과 정확성이 담긴 보도를 하기 위해서는 가끔 사회에 잠식된 무소불위의 권력에 대해 도전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또한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과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한 책임감을 지녀야 하며, 독자들에게 양심적이고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양심적인 보도’가 단순히 기자만의 몫인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양심적인 보도’라는 개념이 너무나 막연하지 않은가? 기자가 단순하게 사실을 보도하기만 하면 되는가? 그 의문들에 대한 답을 찾을…
경북대신문 정다은 기자. 내 이름 뒤에 붙는 ‘기자’라는 수식어가 정기자가 된 지금도 어색하다. 왜 그리 민망하게 느껴질까. 아마도 내 스스로 나의 글의 ‘기자의 것’이라고 보기엔 투박하고 부족한 점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듯하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기자라는 멋들어진 칭호를 입는 것이 부끄럽다는 생각을 계속하게 되는 것 같다. 이 때문인지 인터뷰를 부탁드리기 위해 교수님이나 교직원분들에게 내 소개를 할 때면 마치 영화 ‘캐치미 이프 유 캔’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같은 희대의 사기꾼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기획 회의 후 내가 쓸 기사를 배정받고 나면 며칠 동안 지루한 고뇌의 시간을 보낸다. 사실 ‘고뇌’란 말로 포장한 소득 없는 멍 때리기라고 보는 게 맞다. 그저 빈 화면을 띄운 채 머리 속에서 뒤섞인 단어와 문장들을 어떻게 정리할지 막연히 고민한다. 어떤 문장으로 시작하는 게 좋을까. 어떤 표현을 활용하는 게 매력적일까. 그렇게 한참을 생각하다가 겨우 써 내려간 몇 가닥의 문장들은 대체로 참 볼품없다. 고장 난 제면기가 뱉어낸 못생긴 반죽덩이 같다. 그래도 제 자식이라며 나름대로 잘 다듬어 본다. 하지만 다음 날 맑은 정신으로 다시 읽어보면 그…
나는 수많은 기준들로 점철된 채 살고 있다. 매순간 나 스스로에게 매기는 엄격한 기준들이 있다. 받은 것에 대해 반드시 감사 표현을 해야 한다는 것, 사과를 받았다면 반드시 괜찮다는 말로 상대방을 안심시켜야 한다는 것, 누군가의 수치는 웃음거리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과 같은 기준들. 사소한 것까지도 평가하는 것이 어느새 습관이 되어 있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오늘 점심에 먹은 도시락마저도 맛있었고, 된장찌개는 매웠고, 먹다 보니 질리는 것 같기도 하다고 평가했다. 그래서인지 내가 가지고 있는 잣대를 놓고 재는 것을 멈추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누구든 마땅히 해야 해’라며 내가 가진 잣대로 누군가에게 기대하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당연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또, 그 기대가 어긋날 때면 실망하며 상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갖기 일쑤였다. ‘나는 이렇게 하는데, 넌 왜 이렇게 안 해?’라는 질문을 속으로 수도 없이 던졌다. 이 또한, 상대가 하지 않은 행동이 나에게는 당연했기 때문이었다.그러나 생각해 보면 내가 정해둔 엄격한 기준을 누군가가 해소해 주기까지 바랄 자격은 없었다. 누군가 나를 놓고 이렇게나 조목조목 판단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기
아침 해보다 몇 시간은 먼저 떠오르는 걱정을 뒤로하고 깊은 한숨을 쉬며 나는 또 학교에 갈 준비를 했다.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하며 조금은 걱정을 씻어보려 했다. 가방 속에 든 전공 책들은 삶의 무게 만큼이나 무겁기만 하다. 그렇게 앞만 보고 바쁘게 뛰어가다 보면 어느새 해는 지고 밤이 찾아온다. 그리고 또 새벽이 오면 밝아지려는 어떠한 걱정보다도 먼저 눈을 감으려 애쓴다. 누가 나를 해코지하지 않아도, 어떤 긴박한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과거 괴로웠던 기억이 떠오르고 앞으로의 일을 미리 걱정하며, 나는 불을 끈다.나의 인생에는 늘 불안감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남들보다 1년 늦었다는 두려움과 뚜렷한 미래가 없다는 불안감. 늘 우리의 불안함은 수많은 인파 속에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혼자 있을 때 조용히 뒤로 다가와 칼을 꽂아버린다. 대학에 입학하고 신문사에 들어와 한 선배에게 ‘행복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받았다. 한 번도 생각해보진 않았지만 왜인지 답을 바로 알 것 같았다. ‘손으로 잡으려 하면 사라지는 부질없는 것.’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행복했던 시간을 행복했던 시간 그대로 간직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오르막길 뒤엔…
사람은 왜 사는가? 나는 항상 이런 질문에 농담 반 진담 반인 “죽지 못해서 산다”라고 답했다. 삶은 고난과 시련의 연속이다. 행복의 순간은 찰나에 불과하며 그 찰나마저 많은 횟수가 아니리라 생각한다. 입시 걱정이 끝나면 취업 걱정이, 취업 걱정이 끝나면 독립 걱정이, 대개 우리는 우리의 미래가 굉장히 근사하고 기쁜 일만 가득하기보단 걱정과 힘듦이 더 많은 것이라고 알고 있다. 삶을 연동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단순히 죽음이라는 미지의 공포에서 오는 생물학적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생명을 연명하는 것일까?내 인생에 있어 가장 끔찍했던 순간을 꼽으라면 작년의 기억이다. 1년 동안의 재수 과정과 그리고 씁쓸한 불합격의 고배, 특히 결국 4차 마지막 합격자 발표까지 내 번호가 나오지 않아 절망해 일주일간 방에서 나오지 않았던 그 일주일의 기억은 아직도 꺼내기가 두려워 무의식 저편으로 밀어두었다. 힘들었던 기억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내 뇌의 반사작용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와서는 사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단순히 그냥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었고 일주일 동안 제대로 끼니를 챙겼던 적이 없었다’ 정도로 애매하게 생각날 따름이다. 시간이 흐르고 그때의 기억을 마주할 자
제목을 보자마자 책 한 권이 떠올랐나요?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책을 읽어보셨는지 모르겠네요. 500페이지가 넘는 위압감을 간신히 이겨낸다 하더라도, 첫 장을 펼치면 보이는 첫 문장 ‘영원한 회귀란 신비로운 사상이고, 니체는 이것으로 …’을 읽고도 책을 덮지 않을 용기가 당신께는 있을까요.저로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네요. 이 책은 철학과 정치에 대해, 이데올로기와 사랑에 대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많은주제들에 대해 얘기해요. 저는 그중에서도관계, 종이보다 가벼운 우리의 관계에 대해 글을 써보고자 해요. 소설의 주인공인 토마시는 정신적 사랑과 육체적 사랑이 유리되어 존재할 수 있다고 여겨요. 평생의 사랑이라고 느끼는테레자를 만났음에도, 그는 셀 수 없이 많은 여자와 육체적 관계를 지속하죠. 그들은 서로 사랑했지만 상대방에게 하나의지옥을 선사했어요. 그들은 정말 사랑했지만, 공존 불가능한 그들의 생활 양식은 지속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죠. 다른 여자와함께 있으면서도 테레자 생각을 하는 토마시를 당신은 이해할 수 있나요? 문득 당신의 생각이 궁금해지네요. 당신은위에서 언급한 것이 정반대편
어느 날 인터넷 게시판에서 우리 신문과 관련한 글을 본 적이 있다. 우리 신문을 음식 먹을 때 바닥에 까는 용도로 사용한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읽으면서 마음이 아팠지만, 현실이 이렇다는 것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기자 활동을 하기 전에도 사람들이 신문을 읽기나 할까 걱정을 많이 했었다. 기사를 읽기보다 다른 용도로 쓰는 게 어쩌면 당연한 현상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항상 스마트폰을 가까이 두고 있어 종이 신문보다 스마트폰으로 더 빠르고 편하게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오히려 유튜브와 SNS에서 더 많고 흥미로운 정보를 얻을지도 모른다. 요즘 사람들에게 종이 신문은 필요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아무리 열심히 기사를 써도 읽어줄 사람이 없다면 헛수고가 되어 버리진 않을까 걱정됐고 종이 신문은 어느새 시대에 뒤처진 매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실제로 지난 1999년에 창간돼 20년 동안 대학생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대학내일’이 장기간 휴간, 사실상 폐간 절차를 밟는 것을 보면서 어쩌면 우리 신문도 시대의 흐름 속에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닐까 고민이 많아졌다.그럼에도 신문 기사를 쓴다는 것은 여전히 의미 있는 일이다. 단순히 읽기 쉽게 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