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씻고 만반의 준비를 한다 푹 삶아 익히고 푸욱 끓여 달였다 허무맹랑하고 밋밋 가물가물하고 싱겁다 머리를 쥐어짜며 이것저것 던져 본다 좋다고 하는 건 다 쏟아 부었는데 짜기 만하다 퉤퉤퉤 유명한 레시피를 읽어본다 차근차근 그들의 방법을 따라간다 기막힌 타이밍에 간을 하고 내뿜는 불 또한 화려하다 유연한 손목스냅은 쉐프 뺨친다 허나 왜인지 내 입맛엔 맞지가 않다 퉤퉤퉤엣 퉷 속도 비우고 마음도 비웠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한다 된장과 마요네즈를 적절히 섞고 거기에 식초 한 방울 마블링 죽이는 소고기에 발라서 구워먹는다 당연히 맛있을 줄 알았는데 에잇 퉤 김석현 시와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이었다. 대학에 와서 흥미를 붙여 시를 쓰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에게 시는 이제 밥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요리는 참 어렵다. 시 또한 참 쓰기 어렵다. 시를 잘 쓰기 위해 매일 매일 노력하는 중이다.
수면 잔잔한 흐름 위에 아득하게 몸을 누이고조심스럽게 의식의 요람을 흔들어댄다.사륵사륵 잠길 듯 말 듯 계속해서 스치고울리어 기우뚱거리며 파동은 달아난다. 귓가에 아스라이 들려오던 노크 소리가서서히 멎어 갈 때쯤까딱이던 고개는 옆으로 눕고살랑이는 바람이 모든 것을 걷어가 주었다. 윤채원 안녕하세요. 저는 국어국문학과 17학번 윤채원입니다. 학회 ‘한비’에 들어와 처음으로 시를 써보았는데, 이렇게 신문에 시를 싣게 되어 뿌듯한 마음입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활동하여 더 좋은 시를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시를 만들다 첫 시는 그것이 시인 줄도 모르고 적었다예쁜 것에 예쁜 것을 더하면 더 예쁜 것일 테니까연필 끝에서 또박또박 피어나는 예쁨을 단어에 감아?서투른 솜씨로 엮은 문장을 하얀 종이 위에 수놓았다그것을 소리 내어 읽어 볼 때면 온 세상을 가득 채웠던 물방울 별 이슬 뭉게구름봄비 돌고래 새벽 꽃사슴 마음에 드는 표지의 노트를 골라?반듯이 그어진 검은 줄 아래 좋아하는 단어를 총총히 매달고 나면연필심이 걸어간 자리에 반짝이는 밤하늘 가루가 남는다그것을 어루고 쓸어 완성한 것이 시라고 했다? 국어국문학과 17학번, 시창작 학회 한비 34대 김승혜입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매년 새 국어 교과서를 받으면 책에 실린 시와 소설을 그 자리에서 전부 읽어버리곤 했는데, 특히 단어 하나도 허투루 쓰는 일 없이 의미와 비유로 가득한 시를 좋아했습니다. 나름대로의 기준을 통과한 예쁜 단어들만 적어 두었던 노트는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네요. 혼자만의 보석함에 모아두었던 조각들을 선배 동기들과 나눌 수 있게 된 요즈음이 행복합니다. 한비 파이팅!
오후 두 시의 카페테라스 졸려서 그래 잠깐만 말 걸지 말아줘여자는 오히려 수다스럽다 감은 눈이 떨리지만 숨을 고르게 내쉰다 남자는 슬리퍼에 젖은 흙을 묻힌 채 그녀의 머리카락이 뜨거워지지 않을까 생각하는 중이다 재잘거리던 입술이 잠잠해졌다 유리잔은 훤히 들여다보여서 좋다 무엇으로부터의 안도였다 어울리지 않는 패스트푸드가 식어가고 여자는 코끝에 맴도는 짠내가 마음에 든다 남자는 모든 위태로움을 사랑해 마지 않았지만 싫은 것은 좋지 않다고 말하곤 했고 등꽃이 흐드러지게 핀 정원을 더는 볼 수 없다 도둑 맞았던 지갑만이 텅 빈 채 다음 해 봄, 그를 찾았다 안녕하세요. 시 창작학회 한비의 31代 담비입니다. 벌써 오월이네요. 여름이 이른 대구는 잠시만 밖에 내 놓아도 음식이 금방 상해버리는 계절이에요. 조금 더 짭조름해진다면 이 더위를 오래 버틸 수 있을까요. 이 글은 싫었던 여름에게 정을 붙이려 노력하는 중에 쓴 시입니다. 부족함이 많지만 좋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기 토마토의 성장일기 엄마 난 토마토로 태어나서 너무 좋아요 내가 요즘 만나는 고추장이라는 여자가 있는데 성격이 아주 매콤해요 우리가 몸을 섞을 때면 걔 손이 내 등을 할퀴곤 하는데 그만큼 따끔하고 알싸한 것이 없답니다 그럴 때면 난 더욱 붉은 물결에 눅어들곤 해요 엄마 내가 고추장과 아름다운 결말을 맞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너무 다르지만 하나가 되어도 기묘한 버건디빛 향기를 풍겨요 엄마 세상에는 정반대의 것들이 많이 사는데 왜 우리는 같을 수 있을까요? 나는 비누로 거품을 듬뿍 내서 샤워를 하고 고추장은 바디워시를 손으로 대강 문지른대요 엄마 똑같이 극을 사는 것들에게도 거리가 있다는 것을 믿어요? 나는 토마토로 태어난 게 증오스러웠어요 피부는 벌겋게 달아올라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고 세게 누르면 피눈물이나 흘리곤 했죠 엄마 세상 모두가 반대편에 서있어요 내 건너편에 뻔뻔하게 앉아있는 꼴이 싫어서 처음에는 눈을 감았답니다 하지만 곧 모든 것은 다르니까, 세월이 흘러도 변하는 것은 없으니까 어차피 누군가가 잘못되어야 한다면 나는 옳고 다른 것은 틀렸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이 악물고 버텨요 그럴 때마다 고추장이 생각난답니다 걔는 매콤하니까요 엄
두꺼비에게 김서현 두껍아 두껍아 내 이야기를 들어다오 네가 깊은 곳에 숨어들어 있지만 널 찾으러 깊디깊은 동굴까지 찾아왔다 두껍아 두껍아 동굴 속은 너무 습하고 안개가 자욱해 길을 찾을 수가 없구나 날 위해 한 번만 울어주겠니 두껍아 두껍아 이곳은 울림이 웅장해 한 번의 외침으로 여러 곳의 메아리를 만들어내는구나 너의 울음소리가 사방에서 들린다 두껍아 두껍아 네가 내 이야기를 전해 듣고 이리로 와주었구나 이제 나는 눈을 감으련다 두껍아 두껍아 눈을 떴더니 앞에 너는 없구나 동굴 속 취기에 헛것을 보았나보다 두껍아 두껍아 동굴 속 미라가 되긴 싫구나 날 잡아먹으려 때를 기다리고 있는 거라면 난 걸음을 멈추겠다 두껍아 두껍아 나는 다시 양지로 나가련다 가져온 모든 짐은 여기 두고 떠나련다 두껍아 두껍아 내가 떠나거든 먹이가 사라졌다 한탄하지 말고 대신 내 짐들을 먹어다오 부스러기 한 톨 흘리지 말고 모두 해치워다오 안녕하십니까, 저는 국어국문학과에 재학 중인 16학번 김서현입니다. 이번에 신문에 올리게 된 시는 제가 시 창작 학회 한비를 하면서 ‘술’이라는 시제를 받았을 때 썼던 시입니다. 두꺼비는 독을 품고 있는 무시무시한 친구이기도 하고, 참이슬의 마크이기도
3월 11일의 인터뷰 김민경 간밤에 누워있던 전기장판이 뜨거웠어요 그래서 눈을 뜨자마자 커피를 끓여 마셨죠 냉장고엔 유자청과 토마토주스 콜라가 들어있었지만 전 단 걸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일기장 속으로 꿈을 쓸어담았다가 다시 흩뿌린 것도 그즈음이었군요 그 일기장 속 헤맸던 꿈에서 나는 헤엄치지 못하는 사람이었답니다 그럼에도 물 위에서 춤을 췄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모래로 머리를 감고 진흙으로 화장을 하게 되었지만요 나는 망원경을 가지고 싶어요 그럼 바닷속을 더 자세히 살필 수 있을 테니 하늘에는 사실 별 관심이 없어요 매일 뜨고 지는거 뿐인 것 같아서요 지구가 둥근 게 그 이유라구요? 말도 안 되는 소리 지구는 테이블 모양인걸요 망원경을 손에 들고 바닷속을 걷다보면 언젠간 아래로 떨어져 우주로 갈 수 있을 거에요 그 속에서 나는 습관적으로 손톱을 물어뜯어 주변으로 날려 보내요 그래서 그곳에는 여러 개의 손톱 달이 뜨곤하죠 그러고 보니 간밤에 누웠던 전기장판 위에서도 몇 개의 손톱 달을 봤어요 등을 따끔따끔 찔러 탈탈 털어버리긴 했지만요 장판은 뜨겁고 방 공기는 차가워서 이불 속은 종종 습기가 차곤 해요 그럼 이불 밑 누워있는 저는 흠뻑 젖곤 한답니다 꿈과
*지난 1590호 ‘시가 흐르는 경북대’에서 편집상 문제로 시 전문이 실리지 않아 다시 게재합니다. 꼬리 이재섭 나비는 우물 속 물고기를 잡아먹고 살았다 어둠과 달빛이 보름으로 조각나는 바닥에서 물음표 모양으로 휘발하는 울음소리 그 동선을 따라 부드럽게 휘어지는 꼬리 처음 보았을 때부터 빛을 동경하였으나 침묵보다 소름끼치는 눈부심은 견디지 못했다 나비는 물고기의 눈을 하고 두레박 아래 숨어 꼬리를 고리처럼 걸었다 세상은 타는 빛으로 숨겨져 있어 밤에는 그을음이 남았다 우물 속 어둠은 두렵지만 익숙하였고 미지에 대한 예민함은 머릿 속에 방울을 울렸다 나비는 세상을 우물 안으로 끌어내려 담기로 했다 그는 물을 긷는 자들의 세상을 닿는 만큼씩 훔쳤다 두레박이 수면에 닿으면 어둠의 한 가운데서 동심원으로 퍼져나가고 물결은 둥근 세계의 가장자리를 울림으로 증발시켰다 우물의 바닥은 차츰 높아지고 어둠은 익숙해지고 바닥에서 일던 파문의 규칙성이 일그러질 때쯤 거꾸로 매달린 두레박은 하늘을 잃고 물고기의 숨과 비늘도 어느 세상처럼 굳었다 세상의 보이지 않는 것들은 볼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입에 문 세상은 죽은 물고기처럼 서늘했다 아무 울음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