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차고 뜨끈한 국물이 구미가 당기는 계절, 논메기 매운탕을 맛보러 고향인 달성군으로 향했다. 대구 논메기매운탕 마을이 위치한 2호선 종점, 가장 유명한 식당을 찾아가 혼자 소(小)자를 시켰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얼큰하고 알싸한 국물의 메기매운탕을 좋아했다. 가족들과 주말나들이로 대구 근교인 달성군일대나 청도, 경산 등을 드라이브 하고 나면 항상 마무리 식사는 얼큰한 메기매운탕이었다. 그러나 매운탕을 먹고 왔다고 얘기하면 주변 친구들은 민물고기에 대한 거부감과 경상도 지역에서 많이 쓰는 향신료인 제피가 싫다며 꺼려하곤 했다. 그 음식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무언가 스스로가 촌스러워진 기분이었다.논메기 매운탕은 농촌 경제를 살리기 위해 논에다 메기 치어를 넣어 양식하던 시절, 한 토박이가 집밥 해먹 듯 매운 국물 맛을 살려 ‘촌’스럽게 끓였던 것이 낚시꾼들 사이에 소문이 나면서 자리매김한 향토 음식이다. 논에서 키우지만 메기의 육질이 단단하고 흙냄새가 나지 않는다. 민물고기로 만든 매운탕 음식의 핵심은 비린내 잡기다. 특유의 비린내 때문에 된장, 고추장, 제피, 들깻가루, 청주, 심지어 수제비, 민물새우 등을 넣기도 한다.이번에 간 식당은 제피향이 강하게 느
▲ “따로 하나요!” 메뉴는 따로국밥과 따로국수뿐. 국물의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다. 부산 출신인 필자의 눈에 대구의 시내는 굉장히 독특하다. 근대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오래된 거리와 적산가옥, 높은 건물과 번화한 상가가 밀집돼 모여 있는 형태라는 것도 재미있는데, 그곳들을 대구 사람들은 단 한 마디, ‘시내’라는 말로 압축한다. 그래서 때때로 ‘시내’라는 말에, ‘가장 대구다운’ 뉘앙스가 존재한다고 느낀다.시내 한가운데 있는 ‘국일따로국밥’은 그 뉘앙스가 잘 드러나는 곳이다. ‘대구10味’의 시작도 사실 ‘국일따로국밥’에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한국전쟁이 터지자 피란민들은 잠시 임시수도 역할을 맡았던 대구, 그 중에서도 시내로 몰렸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이 유명한 식당은 한일극장 공터 나무시장 길바닥에서 국에 밥을 만, 말 그대로 ‘국밥’을 팔고 있었다. 그런데 서울에서 피란 온 사람들 중에 양반집 사람들도 많았던 듯하다. 그들이 “우리가 개돼지도 아니고 어떻게 밥을 말아서 먹느냐”고 불평하길래, 주인이 그 사람들에게 국 따로, 밥 따로 푸짐하게 퍼서 대접했다. 그때 그걸 본 다른 손님들이 “돈 얼마 더 줄 테니 우리도 그렇게 먹읍시다”고 너 나 할
만두의 원조라고 불리는 중국에는 찐빵처럼 고기나 채소, 팥 같은 소를 넣은 包子(baozi), 물만두와 비슷한 피에 소를 채워넣은 ?子(jiaozi), 소 없이 반찬을 곁들여 먹는 包子(baozi)로 크게 세 가지 종류의 만두가 있다. 그런데, 대구에는 이 세 가지 유형 어떤 것에도 해당하지 않는 만두가 있다. 바로 납작만두다.납작만두는 대구를 벗어나면 좀처럼 보기 힘들다. 그 중에서도 남산초등학교를 마주보고 있는 ‘미성당만두’에 기자가 직접 찾아갔다. 이곳은 납작만두를 가장 처음 만들어 팔기 시작한 곳이라고 한다. 납작만두는 기존 중국 만두의 느끼한 맛을 제거하기 위해 1960년대 식물성 만두소를 넣어 만들어진 새로운 개념의 만두다. 만두소를 넣는 듯 마는 듯 하게 사용하는 게 특징이다.큰 접시를 주문하자 10분도 안 돼 만두가 차곡차곡 포개어져 나왔다. 납작만두는 그냥 먹으면 ‘밀가루 전’을 먹는 것처럼 아무 맛도 나지 않는다. 그래서 “납작만두에 무슨 맛이 있느냐”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납작만두를 활용하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미성당 만두처럼 파를 올리고 식초, 간장, 고춧가루를 뿌려 먹는 것이다. 기름진 표면 때문에 간장
‘국수’는 오래전부터 서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일본의 소바는 에도시대부터 대중적인 음식으로 자리 잡았고, 이탈리아의 파스타도 포크가 발명되기 전까지 그저 손으로 ‘툭’ 집어먹는 대표적 서민음식이었다. 아마 구하기 쉬운 재료와 쉬운 조리법, 싼 가격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국수로 허기를 채우며 여타 음식과는 또 다른 정을 쌓았다.우리나라에서도 국수는 친근한 음식으로 통한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대구는 국수 소비량이 전국에서 최고일 정도로 특별한 애착을 보인다. ‘누른 국수’는 그런 대구를 대표하는 국수 요리다. 누른 국수는 맛국물을 쓰지 않는 안동의 ‘건진 국수’와는 다르다. 보통 밀가루에 콩가루를 섞어 얇고 널찍하게 밀고 겹쳐 가늘게 채 썬 다음 멸치 맛국물에 넣고 끓인다. 누른 국수의 인기는 60~70년대 분식 장려 기간 동안 비약적으로 올랐다.기자는 직접 누른 국수를 먹으러 서문시장으로 갔다. 서문시장에서 국숫집을 하는 노점은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원주 할미 손맛, 화숙이네, 성주 할미 등 이름도 소탈한데다 따로 맛집도 없다. 아무 데나 들어가서 ‘칼국수’를 달라고 하면 그만이다. 한 번에 세 그릇을 시켜도 오래 기다리는 일 없이 10분 정도
대구 막창의 역사는 도축장 중심으로 시작됐다. 1969년 4월 현재 성당못 옆 두류수영장 자리에서 도축 전문법인 ‘신흥산업’이 개업하고 1970년 시립도축장으로 발돋움하면서 막창구이 시대가 열린다. 1970년대 초부터 유행한 막창은 본래 소주와 궁합이 잘 맞는 안주거리였다. 그 의미에 맞게 신문사 선배와 술 한 잔 기울이려 막창 집을 향했다. 장소는 돼지막창과 곱창으로 유명한 안지랑 곱창골목으로 정했다. 원래 막창은 소의 네 번째 위인 홍창이지만 돼지의 창자 끝부분도 막창구이로 이용되어 소막창에 비해 더 기름진 맛과 덜 질긴 식감으로 인기를 끌었다.막창이 나오기 전 막창 맛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막장부터 맛을 봤다. 된장을 기본으로 하는 이 소스는 땅콩, 콩가루, 고춧가루 등 10여 가지 재료로 만들었다. 주인께 들어보니 막창 맛집마다 들러 맛을 보고 계속된 실험 끝에 만든 이 집만의 막장이었다. 적절한 짭잘함과 고소함은 기대감을 높혀주었다. 드디어 온 막창은 초벌구이를 한 상태였다. 토치로 빠르게 초벌구이를 하는 이유에 대해 주인은 “오래 굽게 되면 육즙이 사라져 토치로 빨리 익힌다”고 말했다. 막창은 참을성이 필요했다. 초벌을 했어도 불판에 바짝 익혀
▲ 차가운 백김치 위 복어불고기와 콩나물 한 점. 사과를 갈아 넣은 백김치의 달달함이 불고기의 매콤함과 어우러진다. 수성구에 있는 들안길은 식당 100여 곳이 모여 있는 식도락의 거리다. 학교에서 버스로 40분 쯤 달려 들안길에 도착하면 식당 곳곳에서 풍겨오는 군침 도는 냄새에 혀에 침이 고인다. 기자가 찾아간 곳은 ‘복어불고기’의 원조로 유명한 ‘미성 복어불고기’. 들안길이 번성하기 전부터 자리를 잡은 식당이다. 직원의 추천으로 밀복(복어의 일종) 불고기를 주문했다. 넓은 철판에 먹기 좋게 썬 복어와 새빨간 양념, 콩나물, 당면이 섞인 복어불고기의 겉모습은 아귀찜과 흡사하다. 여태껏 먹어본 복어 요리는 복어지리(맑은 탕 요리)밖에 없어 그 맛이 무척 기대됐다. 혀끝에 한 점 올렸다. 매콤하고 적당히 달착지근한 양념과 지방이 없어 탄력적인 복어살코기, 아삭아삭한 콩나물이 저절로 녹아내려 목구멍으로 사라졌다. 같이 먹던 친구와 서로를 놀란 눈으로 보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부지런히 젓가락을 움직였다. 특히 꼬리 부분이 별미다. 바다에서 헤엄치다 온 힘이 있는 건지, 발라먹기는 힘들지만 그만큼 쫀득하고 담백한 맛이 있다. 아무리 맛있어도 매운 것만 계속 먹으면 목
야끼우동, 이자카야에서 안주로 만날 것 같은 이 음식은 무려 40년 전부터 대구에 자리를 잡고 있다. 시작은 세 명의 중화 요리사들이었다. 1970년대에 중국 면 요리를 대구 사람들의 입맛에 맞춰 새롭게 개발해낸 것이 현재 ‘대구 야끼우동’의 시초가 됐다. 원조 야끼우동 식당으로 유명한 곳은 두 군데가 있다. 동성로 중앙무대 인근 골목에 위치한 ‘중화반점’과 대구 근대역사관 맞은편 골목의 중식당 ‘공이사’다. 이 두 식당은 개발자인 세 요리사들 중 둘이 각각 운영한 식당들이다. 대구백화점 앞 동성로 중앙무대, 이곳에서 패스트푸드점 골목으로 들어서면 얼마 지나지 않아 옛 느낌이 물씬 나는 ‘중화반점’의 간판이 보인다. 간판에도 ‘원조 야끼우동’이라고 적어놓았을 만큼 야끼우동을 찾아오는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서 살펴보면 테이블마다 야끼우동을 주문하지 않은 곳이 없다. 9,000원짜리 야끼우동 한 그릇을 주문한 뒤 옆 테이블을 슬쩍 보니, 그들의 테이블에도 어김없이 야끼우동이 올라와 있었다. 식사 중이던 손님들에게 맛이 어떻느냐고 말을 걸었다. 대부분이 호평 일색이었다. “불맛과 마늘맛이 강하게 나서 매우 맛있다”는 한 손님의 말과 같이,…
우리나라 최초의 음식조리서이자, 경북 안동의 장씨 부인이 저술했다고 알려진 ‘음식디미방'에는 술안주 조리법만 50가지가 나온다. 그만큼 경상도 지역에서는 술안주 요리가 발달했다. 술을 좋아하는 일명 ‘주당’들은 더 맛있는 안주를 만들어내기 위해 고군분투 했고, 다양한 요리를 개발했다. 뭉티기도 그런 노력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김정자 대구시 문화해설사에 따르면, 전국적으로는 ‘육회’가 보편적으로 인기가 있지만, 대구에서 시작된 한우 생고기인 ‘뭉티기’는 여전히 지역민의 인기를 얻고 있다. 대구 향촌동에는 1960년대 초반부터 생고기 집이 생겨났다. ‘너구리’ 라는 식당을 시작으로 원조를 논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집들이 생겼다고 한다. 지금도 경상감영공원 정류장 근처에서는 줄지어 있는 생고기 집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이 생고기를 엄지손가락만한 크기로 썰어 먹는다고 해서 뭉티기로 불렀다. 술안주인 뭉티기를 먹으려면 준비가 필요하다. 밥을 먹고 오는 건 물론이고, 비싼 가격을 감당할 마음도 가져와야 한다. 뭉티기의 가격은 100g의 경우 15,000원이다. 떨리는 입으로 중(300g)‘짜’를 달라고 하자, 간단히 요기를 할 수 있는 잔치국수부터, 족발, 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