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말 「이웃사촌」이라는 영화가 개봉되었다. 이 영화는 국가정보기관에 의해 가택연금을 당한 제1야당 총재와 그를 감시하는 정보 요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요즘과 같은 상황이라면 ‘영화 속의 가택연금이 실제로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 법도 하지만 군사정권 시절 불법 가택연금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독재정권 혹은 군사정권 아래서 사법적 절차와 재판의 과정 없이, 정치적 반대자나 사회적 지도자의 사회활동을 금지하기 위해 경찰이나 군대와 같은 강제력을 동원해 가택에 감금하는 경우는 흔했다. 가택연금은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중들로부터 정치지도자를 고립시키기 위한 정치공작의 일종으로, 그 자체가 바로 독재정권의 정치적 억압의 상징이었다. 군부 쿠데타가 일어난 미얀마에서 민주화의 상징이었던 아웅산 수치 국가 고문이 다시 무기한 가택연금 상황에 놓였다고 한다. 독재정권 하에서 시민의 정치적 권리는 공공연하게 침해를 당했다. 그래서 민주화를 요구하지 않았던가.「이웃사촌」의 시대적 배경은 1980년대이다. 당시 실제로 가택연금을 당했고, 영화의 결말처럼 나중에 대통령이 된 인물은 김영삼과 김대중이다. 물론 실화를 다룬 영화는 아니고 그것을 모티브로 삼았을 뿐이다. 영
경북대학교 졸업생이나 재학생이라면 누구나 박물관 옆에 넓게 조성된 야외전시장을 알 것이다. 인흥사지 석탑과 고려시대 부도, 불상을 비롯한 각종 석조문화재가 잘 조경한 공간에 자리 잡고 있는 이곳은 월파원(月坡園)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다. 꽃들이 만개하는 봄이나 단풍 물드는 가을, 혹은 하얀 눈이 쌓여 절경을 이루는 겨울이면 학내의 대표적인 포토 존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휘영청 달이 뜨는 밤 월파원의 풍광도 멋들어진다. 원래 잡초만 무성한 언덕이었다는 이곳을 이렇게 아름다운 공간으로 조성한 이는 경북대 제4대 총장 월파 계철순(1961-1968 재임)이었다. 월파원이란 이름은 그의 호를 따서 붙인 것이다.학내 구성원들은 물론이고 인근 지역 주민들의 산책 장소이기도 한 월파원이 조성되던 시절의 이야기는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다. 계철순이 경북대 총장으로 임명된 시기는 1961년 12월이었다. 박정희를 필두로 한 일군의 군인들이 5·16 군사정변으로 선거를 통해 합법적으로 수립된 장면정권을 전복하고 권력을 틀어쥔 바로 그해 겨울이다. 사진 속 편지의 발신인 박정희와 수신인 계철순. 지금부터 풀어나갈 이야기는 박정희가 직접 손으로 쓴 이 편지글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해방의 기쁨도 잠시. 해방 이듬해인 1946년, 이 해는 악성 인플레이션과 식량부족으로 전국이 들끓었다. 무엇보다 잠시 따뜻했던 봄날이 여름과 함께 악성 전염병으로 이어졌다. 1946년 5월 2일 부산에서 첫 환자가 발생한 후 순식간에 ‘호열자’(콜레라)가 남쪽지방 전체를 휩쓸었다. 11월, 겨울에 들어설 무렵 콜레라가 진정되었을 때 사망자는 만 명이 넘었다. 가장 피해가 큰 지역이 경상도, 그 중에서도 대구를 포함한 경북이었다. 5월 27일 처음 청도, 그리고 6월 5일 대구에서도 환자가 발생했다. 요즘처럼 이동이 활발하지 않았던 까닭에 부산에서 환자가 나오고 한 달 만에 경상도에 콜레라가 퍼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 번 퍼진 콜레라는 곧장 사람의 목숨을 노렸다. 걸리면 이삼일만에 숨을 거두는 이들이 절반을 넘었다. 그 해 8월말 전국 환자 9천여명, 4명 중 1명은 경북사람들이었다. 특히 경북지역 사망률이 유독 높아 더 무서웠다. 8월말까지 전국 사망자 중 40%인 2천여명이 경북사람이었다. 걸리면 무방비상태로 죽어갔다.해방은 되었으나 미군이 이 땅을 점령하고 있던 때, 미군정청이 전염병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나섰다. 기차를 타려면 예방주사 맞은 증명서를
지금 여기 우리는, 상징과 이미지의 시대에 살고 있다. 경북대학교의 심벌마크와 엠블럼에 있는 상징의 의미를 제대로 아는 경대인이 얼마나 될까? 우리대학의 심벌은 둥그런 원 안에 첨성대와 여섯 개 별이 있고 꽃잎이 감싸 안고 있는 모습이다. 첨성대는 신라문화의 긍지를 의미할 것이고, 꽃잎은 우리대학 곳곳에 심어져 있는 학교의 꽃인 감꽃을 상징할 것이리라. 그렇다면 첨성대 위에 있는 별 여섯 개의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대학은 해방 이듬해인 1946년 기존의 대구사범대학, 대구농과대학, 대구의과대학이 각각 국립대학으로 승격한 해를 개교년도로 삼는다. 이를 기점으로 2021년도는 개교 75주년이 되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기존의 세 대학을 모체로 하여 국립 경북대학교로 통합 개편되고 국회 승인 후에 정식으로 설립 인가가 난 것은 1951년 10월 6일이고, 기존의 사범대학, 농과대학, 의과대학 이외에 문리과대학, 법정대학을 신설하여 1952년 5월 28일에 문교부장관이 참가한 개교식을 통해 정식으로 경북대학교가 출범하였다. 또 그 이듬해에 대학원이 설치되었다. 따라서 첨성대 위의 별 여섯 개는 바로 대학원을 포함하여 국립대학 설립당시의 5개 단과대학을 의미하
“와, 합격이다. 야, 학교 가자.” 2월이면 고등학생 티가 폴폴 나는 합격생들과 학교좀 아는 재학생들이 캠퍼스 곳곳을 다니며 웃음소리가높은 때. 3월이면 신입생들이 강의실에서, 만개하는 벚꽃길 아래서 왁자지끌 자유를 만끽하는 때. 이 당연한일상이 당연하지 않았던 2020년. 노멀이 달라졌다고 한다. 대학도 강의실보다 온라인 공간에서 서로 얼굴을맞대고 더 밀접하게 접촉하고 있다. 이제 캠퍼스는 상주나 대구 그 어느 땅에만 있지 않고 어디에나 있다.학생들이 있는 곳이 경북대학교가 되었다. 대학에 들어오면 누구나 받는 합격증과 학생증. 이 두개의 증명서는 고등학교 시절의 노력도 담고 있지만, 사실 내 삶의 미래를 담을 초대장이라고 보는 게 훨씬 정확하다. 누구는 경북대학교 합격증을 받고 환호했을 테고, 누구는 조금 아쉬워했을지도 모른다. 누군 경북대학교 학생증을 하루에도 몇 번씩 꺼내 도서관을 들락이면서 자부심을 차곡차곡 담을 테고 누군 그냥 처박아둘지도 모른다. 어떻든 우리들은 합격증을 받았고 학생증을손에 쥐게 되었다. 여기에 무엇을 담을까. 합격증도 시대와 같이 흘러왔다. 한자가 빼곡한 합격증에서부터 도트프린트 활자가 찍힌 합격증, 그리고종이증서가 필요 없어
대학원동 동편에 있는 매화동산, 거기에 꽃이 피면서 2021학년도 1학기가 시작되었다. 매화는 가장 먼저봄을 알리니, 옛사람들은 이를 통해 천지의 마음을 본다고 했다. 매화가 인(仁)이요 생명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인이 사람과 사물을 살리는 마음이라 생각하며, 두꺼운 목피를 뚫고 나오는 꽃에서 어떤 강인함도감지했다. 이 때문에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 즉 ‘매화는 일생동안 춥게 지내더라도 향기는 팔지 않는다.’라는 말이 생겨났다. 캠퍼스를 거닐다가 감나무를 만나기도 한다. 경북대의 교화(校花)가 감꽃이고, 축제도 감꽃 축제 혹은 감꽃 문화제라 한 적이 있으니, 경북대와 감나무는 밀접한 관계에 놓인다. 감은 제사상에도 올라가는 중요한과일이기 때문에 마을이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감나무가 존재한다. 캠퍼스가 만들어지기 전, 이곳 복현골도햇살 잘 드는 남향 언덕에 감나무를 가꾸며 사는 작은 민가가 옹기종기 모여 봄 햇살에 졸고 있었을 것이다. 1952년에 5월 28일, 개교식장에서 당시 문교부장관이었던 백낙준은 초대총장 고병간 박사에게, 황금빛의감, 자색의 능금과 포도가 이 지역에서 많이 생산된다고 하면서, 이 두 색이 경북대의 빛[色]이라 했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