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에 위치한 731부대 기념관. 약 백 년 전, 이곳에서는 일제의 생체실험이 자행됐다. 죄 없는 사람들과 생화학무기를 실어 나르던 철길, 사람들은 곧 다가올 자신들의 운명을 알고 있었을까? 조재훈(사범대 역사교육 17)
길었던 1년도 마무리돼가고 어느새 12월이 성큼 다가왔다. 완전히 겨울이 됐음을 알리듯 알록달록 들었던 단풍들도 하나둘 떨어져가고 대부분의 학우들이 두꺼운 코트나 롱패딩을 입고 있다. 멀게만 느껴졌던 기말고사도 어느새 한 주 앞으로 다가와 학생들은 각자 나름의 계획과 방법으로 기말고사 준비에 여념 없다. 경북대신문 제1637호 1면에서는 2020년 학생대표자 선거가 종료됐음과 함께 ‘스케치’ 선거본부가 2020년 총학생회로 당선됐음을 알리고 있다. 총학생회뿐만 아니라 각 단과대의 투표율과 득표율을 표로 정리해 나타낸 점이 좋았다. 총학생회 선거가 전자투표로 진행됐기 때문에 투표하기가 더 편해졌다고 생각했는데, 투표율이 절반도 되지 않아 연장투표를 통해 겨우 당선이 확정됐다는 것이 의외였다. 총학생회가 1년간 학생들을 대표해 학교를 이끌어 나가야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은 만큼 선거에 대한 더 많은 학생들의 관심과 참여가 매우 중요할 것이다. 새로운 총학에서는 학생들이 총학생회에 충분한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학생들과 더 적극적으로 소통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1면에서는 새로운 호반우 캐릭터에 대해 소개하고 있었는데 새로 뽑힌 호반우 캐릭터의 의미와 이름에 대해
본교 생활관에 산 지도 만 3년이 다 됐다. 첫 생활관이었던 긍지관. 아무것도 모르던 새내기 4명이 개강 첫날 방에서 처음 만나 어색해 하며 문화관 식당에서 아침을 먹던 것이 아직도 기억난다. 두 번째 생활관이었던 진리관. 운 좋게 진리관에서 가장 넓은 3인실에 배정됐고, 입담 좋은 형들을 만나 자기 전마다 방에는 웃음이 넘치곤 했다. 그리고 지금은 향토관의 조용한 새벽이 지나가고 있다.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20대 초반 대학 생활에 생활관은 포근한 보금자리가 돼 줬다.그러나 최근 본교 생활관은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지난달 내내 제기됐던 제44대 ‘위더스’ 관생자치회에 관한 논란과 이에 대한 관생회 회장의 무책임한 답변은 많은 관생들을 마음 상하게 했다. 관생회는 첨성관 소송 문제를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이를 관생에게 공개하지 않았고, 쪽문 확장 문제는 관생의 의견을 듣지 않고 독단적으로 처리했다. 지난달 13일 첨성관 지하식당에서 열린 관생총회에서 관생회 회장은 관생회칙 위반 등 논란에 대해서는 거듭 사과했다. 그러나 관생회 회장은 이에 대한 구체적인 개선 방안을 제시하지 않고 올해 관생회가 해온 업적들을 관생에게 설명하기에…
지난 20대 총선 이후 ‘협치’라는 단어가 한동안 세간에 맴돌았다. 국회에서 과반수를 얻은 정당은 없었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은 서로 120여 석을 나눠 가졌으며, 그 사이의 다른 정당들도 적지 않은 의석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이 국정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서로 협력해야 했다. 협치는 그렇게 이야기되기 시작했다. 당시 국회의장이던 정세균 의원은 협치에 대해 ‘각자의 주장에서 벗어나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공동선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대로, 사람들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양보해 가는 ‘협치’를 하길 바랐다.그로부터 3년이 지났다. 광화문에는 수많은 촛불과 태극기가 지나갔고, 여러 번의 단식과 한 번의 필리버스터가 있었다. 그동안 우리는 성향이 다른 정치인들이 ‘협치’하는 사례를 얼마나 보았는가? 그리고 그것은 그들이 서로 싸운 사례에 비해 얼마나 많았을까? 정확한 통계를 낼 수는 없되 그들의 타협을 보며 흐뭇해했던 기억이 없는 것을 생각해 보면 협치보다는 대치가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 같다.누구를 집어 탓하기도 어렵다. 한 정당이 어떤 정책을 제안하면 다른 정당은 깊이 검토도 하지 않은 채 반대에 나서고, 제안한 정당은 반대 의견을 들을…
지난 11월 21일, 프랑스에서 아일랜드로 가는 화물 컨테이너 안에서 16명의 이주민이 살아 발견됐다는 말에, 필자는 일단 가슴을 쓸어내렸다. 두 달 전 벨기에 제브뤼헤에서 영국 에섹스로 이송된 냉동고에서 사체로 발견된 39명의 베트남인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럽발 뉴스를 찾아보면, 지난 한 달 “대형화물차(lorry)에서 발견된 이주민”에 대한 소식이 예사롭지 않다. 19일에는 네덜란드에서 영국으로 가는 컨테이너에서 25명이, 6일에는 네덜란드에서 영국으로 가는 컨테이너에서 아동을 포함한 20명이, 4일에는 그리스 냉동차에서 41명이, 지난 10월 30일에는 벨기에를 지나는 냉동차에서 12명의 이주민이 경찰에 의해 발견되었다. 출신 국가도 이란, 수단,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베트남 등 다양하다. 이들은 왜 화물차에서 발견되는 것인가?전쟁과 빈곤으로 난민과 이주민의 숫자는 늘어나는데, 1951년 UN 난민협약을 기초로 한 거버넌스 시스템은, 빈곤에 쫓기는 “경제난민”을 난민의 법적 정의에서 제외하고도 늘어나는 수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난민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10개국 중, OECD 가입국은 터키(1위)와 독일(8위) 단 두
‘악플’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악플은 악성 댓글(리플, reply)의 줄임말로, 인터넷상에서 상대방을 비방하거나 조롱하기 위해 작성된 악의적인 댓글들을 일컫는다. 특정 인물을 향한 인신공격, 허위사실 유포, 저주 등이 이에 포함된다.악플은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한 직후부터 꾸준히 사회적 문제로 거론됐다. 단순히 누군가를 모욕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나아가 그의 삶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특히 이름이 잘 알려진 연예인이나 정치인, 공인의 경우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 친구, 연인에 대한 공격까지 받게 된다. 인신 공격적 악플은 당사자에게 모욕감을 주고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게 만들며, 대인기피증이나 불면증, 우울증, 공황장애, 스트레스 장애 등 여러 정신적 피해를 입힌다. 심할 경우 최근의 몇몇 연예인 사례처럼 자살로 이어지기도 한다.그런데도 현재까지 악플이 근절되지 않은 데에는 미약한 처벌이 한몫했다. 현행법상 사실 적시 혹은 허위 적시 명예훼손으로 인정될 경우 최대 7년의 징역과 5천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을 수 있지만, 대다수의 경우 악플 작성자를 고소하더라도 벌금형 1~300만 원 정도로 그치는 실정이다. 악플 작성자가
▲올해 5급 공채 일반 행정직에 합격한 본교 이성식(좌) 씨와 박인혜(우) 씨가 카메라를 향해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올해 5급 공채 일반 행정직에서 본교 박인혜(행정 15), 이성식(행정 14), 김동하(약대 약학 12) 씨가 합격했다. 특히 박인혜 씨는 본교 행정학부가 개설된 이래 첫 수석 합격자다. 행정고시는 ▲제1차 선택형 필기시험(PSAT) ▲제2차 논문형 필기시험 ▲제3차 면접으로 나눠 진행된다. 3명의 합격자 중 박인혜, 이성식 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행정고시를 준비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박인혜(이하 박): 행정학부에서는 1학년을 대상으로 논술대회나 PSAT 모의고사를 실시하고 있는데, 시험을 쳤을 때 생각보다 결과가 좋았다. 이후 교수님들이 성적이 좋은 학생들을 모아 행정고시를 쳐볼 것을 설득하셨고 시험을 준비하게 됐다.이성식(이하 이): 사기업에서 돈을 많이 버는 것에서 느껴지는 성취감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후에 직업을 가진다면 공무원이 하고 싶었다. Q. 합격했을 때의 소감은? 박: 많은 경우 2차 시험만 합격하면 3차 면접의 경우 무난히 통과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상 합격했다는 느낌을 받은 건 2차 합격 이후다. 그러나…
지금 내 대학생활 1년을 돌아보면 후회되는 것들이 많다. 부모님을 비롯해 여러 어른들이 스무 살에 많은 걸 경험해야 한다고 늘 얘기해 왔다. 어쩌면 나는 무엇을 많이 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내 스무 살을 너무 눈치만 보며 살았던 것이 아닌가 싶다.물론 스무 살이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는 나이임은 분명하다. 성인으로서의 첫 걸음이며 스물한 살 이상의 성인이 주는 의미와는 확연히 달라 보인다. 생각해보면 스무 살이라서 못 하고 못 보는 것들도 많다. 많은 친구들이 술을 마시고 사람을 만나는 데 쓴 돈이 아깝다고 하지만 난 이러한 부분에 쓴 돈이 절대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군대를 다녀오고 정말 내가 내 인생을 위해 노력해야 할 때 뒤늦게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는 스무 살에 실컷 노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대학교라는 보다 큰 사회에 들어와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인간관계에 대해서 배워보는 이 시간 또한 여행에서 배우는 여러 가지와 마찬가지로 값지다고 생각한다. 스무 살이 아니면 언제 동기 자취방에서 밤새 놀고 시험기간에도 과방에서 야식을 먹으면서 노는 추억을 만들 수 있을까. 이 추억들도 지나고 보면 내 인생에 있어서 큰 힘을 줄 수 있을 것이